[기자수첩]`죄송합니다`라는 말

김상룡

 이기태 삼성전자 사장은 10년 전 구미 공장에서 15만대에 이르는 휴대폰을 불태웠다. ‘성능이 안 좋다’는 것이 이유였다. 시가 500억원이 넘는 휴대폰을, 그것도 외산 제품에 비해 통화품질이 뒤진다는 것 때문에. 기자의 마음 속에는 이 사건이 화인(火印)처럼 남아 있다. 10년 뒤 지금, ‘애니콜’은 삼성의 대표 히트상품이자 세계인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휴대폰 브랜드가 됐다.

 지난 한 주간은 슬림형 브라운관 디지털TV(이하 슬림TV) 화면왜곡 현상으로 정보가전업계가 시끄러웠다. 한 온라인 가격비교 사이트에서 업계 전문가와 함께 슬림TV의 화면왜곡 현상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본지는 4월 28일 처음으로 화면왜곡 현상을 보도했었다. 이 같은 보도가 나가자 슬림TV를 월 1만여대 넘게 팔고 있다던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아예 입을 다물었다.

 이런 와중에 삼성전자는 화면왜곡 현상을 개선한 슬림TV를 이번주부터 출하했다. 슬림TV 2차 모델이라고 한다. 시중 판매가격은 122만원대로 종전 TV에 비해 다소 내렸다. 그러나 소비자 반응은 냉정하다. 일부에서는 제품 ‘결함’을 알면서 서둘러 제품을 판매했다는 도덕성 문제까지 거론하기도 한다.

 102인치, 71인치 TV를 만든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섭섭하다. 아무 말도 안 하는 이들의 입이 서운하고, 휴대폰을 불태우는 철저한 반성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

 철저하기로 소문난 이들 업체의 TV 개발 과정에서 화면왜곡 현상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가설은 존재할 수도, 존재해서도 안 된다. 실험 결과 브라운관 관련 기술을 아는 사람이라면 화면왜곡 현상을 쉽게 찾아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서둘러 출시했을까. 결론은 쉽게 나온다.

 이제는 ‘반성’할 때다. 화면이 일그러지는 슬림TV를 사준 소비자에게, 대한민국 국민에게, 지구촌 잠재적 고객에게. ‘휴대폰 화형식’을 가지며 가슴에 시커멓게 재로 남았을 10년 전 사건을 곱씹으며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먼저 꺼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초일류’고 ‘글로벌 톱’이다.

디지털산업부·김상룡기자@전자신문, sr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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