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대기업과 SW 中企 상생 조건

최근 SW산업계에서 대기업과 중소업체 간 불공정 하도급 거래관행이 문제가 되고 있다. 사실 이에 관한 논의는 비단 SW산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제조업, 건설업 등 우리 경제가 풀어야 할 오랜 과제다. 그동안 우리 경제는 60∼80년대 대기업 중심의 성장정책이라는 독특한 경제시스템으로 발전했고, 그 결과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달성, OECD 가입이라는 과실을 얻었다. 하지만 정경유착, 노사갈등을 비롯해 대·중소기업의 수직적 하도급 관계와 같은 사회·경제적으로 성숙되지 못한 문제들도 낳았던 것이다.

 다행히 최근 들어 대·중소기업 모두 상호협력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를 실천으로 옮기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대한상공회의소가 실시한 ‘대·중소기업 협력실태’에 따르면 조사 기업의 95%가 ‘협력의 필요성은 느끼지만 실제 협력은 부진한 상황’이라고 답해 이를 잘 대변해 준다. 이러한 상황 인식은 곧 문제의 해결을 대기업 대 중소기업이라는 대결구도로 끌고 간다. 하지만 지금의 대기업 구도를 단기간에 바꿀 수도 없을뿐더러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을 도외시할 수 없지 않은가. 선택과 집중이라는 명제 하에 스타기업을 육성한다는 논리로 중소기업 다수를 외면할 수밖에 없다면 스타기업인 줄 알았던 기업이 실패할 경우 그 산업은 포기할 것인가. 무엇보다 좁은 내수시장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대기업 대 중소기업이라는 이분법적인 논리를 빨리 떨쳐 버려야 한다. 좁은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을 위해 균형발전을 추진하듯 산업에서도 대·중소기업 간 균형 성장이 필요한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에는 중소기업을 단순 하청관계가 아닌 자본과 기술, 정보 등을 공유하는 동반자로 인식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일본은 가격·품질 면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과한 협력회사에 대해 대기업의 기술지도 및 자금지원이 일반화되어 있다. SW 강국인 미국에서도 수많은 중소기업군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M&A를 통해 IBM,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세계적인 기업들을 만들었고 지금도 이러한 방법으로 육성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IBM의 하청으로 출발한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올해를 도약 원년으로 선포한 SW산업에서도 실질적인 대·중소기업 협력모델을 모색해야 한다. 우선 대기업은 국내시장에서 영토확장이나 시스템 관리로 연명하기보다는 주력업종을 중심으로 전문화를 이뤄야 한다. 세계시장에서 100위권도 안 되는 규모로 모든 업종의 IT서비스를 한다는 것은 사업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다음으로 솔루션 자체를 개발하기보다는 전문SW기업의 솔루션을 이용하는 풍토를 길러야 한다. 세계적인 IT서비스기업 중에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는 예가 있는가. IBM의 경우도 그 중심축이 되는 솔루션들은 대부분 합병 등을 통해 확보했다. 해외진출에 있어서도 경쟁력 있는 국내 솔루션의 확보는 필수적이다. 외국산 솔루션만으로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을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도 대기업이 전문화해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분야에 대해서는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남이 하면 따라하고, 경쟁사의 것을 써주느니 외산을 쓰는 것이 낫다는 소아적 시각을 버려야 한다.

 중소SW기업도 ‘사회적 약자’라고 정부나 대기업의 시혜에만 매달리지 말고 특화된 기술로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상생이란 서로 어느 정도 조건이 맞을 때 가능하다. 중소SW기업은 상생을 위한 최소한의 경쟁력이라도 갖춰야 된다. 동영상 압축기술을 개발한 네오엠텔을 비롯해 인트로모바일, 리코시스 등 모바일시장에서 성과를 올리고 있는 중소SW기업들은 특화된 기술을 보유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마케팅·자본 등이 부족한 중소SW기업으로서는 전문성이 있는 솔루션 개발을 통해서만이 대기업과의 상생을 모색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스스로 세계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SW산업은 저가수주, 중소SW기업에 대한 적자 전가와 같은 폐단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다행히 최근 ‘중소SW사업자 참여지원제도’ ‘SW기술성평가기준’ 등이 빠르게 정착되면서 경쟁력 있는 중소SW기업이 대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고 있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교훈과 같이 큰 기업이 제대로 설 수 있도록 지탱해 주는 작은 기업을 존중하는 문화가 형성되지 않으면 대기업도 위태로워짐을 깨달아야 한다”는 어느 대기업 임원의 말처럼 대·중소기업의 공정거래는 SW산업이 도약하기 위한 토양이다.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 대기업의 중소SW기업에 대한 인식의 변화, 중소SW기업의 전문성 강화 등이 어우러져 대·중소기업 사이에 진정한 상생의 틀이 자리 잡는 원년이 되었으면 한다.

◆고현진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장 hjko@softwar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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