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많은 연인은 집배원 아저씨가 전해 주는 연애편지를 기다리며 사랑의 감정을 키웠다. 인터넷이 보편화된 요즘엔 전자우편이나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곧바로 사랑의 언어를 전달할 수 있게 됐다. 사랑의 전령사는 예전엔 집배원 몫이었지만 지금은 인터넷과 휴대폰이 이를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인터넷이란 전령사는 집배원 아저씨만큼 친근하지도 성실하지도 않으며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정보통신망의 집합체다. 인터넷엔 허점도 많아서 사랑의 내용이 담긴 전자우편이 전달되는 과정에 누군가 이를 채어갈 수도 있고 사랑의 내용이 아닌 이별의 내용으로 바꿔치기해서 보낼 수도 있다. 해커라는 악당이 해킹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자서명은 바로 이 같은 폐단을 없애기 위해 탄생한 디지털 신분증이다.
전자서명은 전자우편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한 거래에서 신원을 확인하고, 위·변조를 방지하는 등의 기능을 제공하는 전자거래의 안전장치로 인터넷 시대의 핵심인프라다. 우리나라는 전자서명법을 1999년 7월 제정한 이래 2001년 1월과 12월 두 차례 개정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2005년 3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1100만여명의 공인인증서 이용자를 보유해 명실상부한 전자서명 선진국으로 꼽힌다. 이 같은 전자서명은 공인인증기관을 통하여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아 사용한다.
일본과 독일의 경우에는 인증업무 영역별로 공인인증기관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특정인증업무에 관해서는 정부부처의 인정을 받은 기관이 공인인증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이용자 측면에선 분야별로 여러 인증서를 사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뒤따른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는 하나의 공인인증서를 가지고 여러 용도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상호연동정책을 펼쳐 일본보다 사용자 편의성을 높여 공인인증서 보급을 크게 늘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강점에도 불구하고 일부 공인인증기관에 인증서 발급이 쏠리고, 인증서 무료보급 장기화에 따른 재원 부족으로 다양한 응용분야 발굴과 편리성을 높이기 위한 재투자 미흡 등 전자서명법 제정 초기에 예측하지 못한 문제점들이 도출되면서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또한 유비쿼터스 사회로 가기 위하여 필요한 첨단 전자인증기술 개발을 여타 국가들이 한 발 앞서 추진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미국의 경우 전자서명의 핵심기술인 공개키 기반구조(PKI) 기술 개발 초기에는 법적 서명기능에 중점을 두고 추진했으나, 최근에는 PKI 기술에 한정하지 않고 RFID인증·생체인증·기기인증시스템 등을 통합적인 관점에서 다루는 전자인증(e-Authentication) 정책으로 진화하면서 유비쿼터스 시대의 핵심 인증수단에 대비하고 있다.
전자서명에서는 후발주자라 할 수 있는 대만도 2003년 4월부터 2007년까지 PKI 상호연동 및 발전을 위한 프로젝트를 정부차원에서 추진중이다. 프로젝트 추진 이후 현재까지 총 42개 응용과제에 240만달러를 투입하여 금융서비스, 전자상거래, 기업 인트라넷, 의료, 온라인 게임 등에 PKI 이용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 각국은 전자서명 기술을 활용한 미래사회에 철저히 대비해 나가고 있어 우리나라도 세계 최고의 전자서명 선진국의 자존심을 지키려면 지금까지 기울여온 것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전자서명의 응용범위는 무궁무진해 인터넷에서의 주민번호 오남용을 해결하는 데에도 활용될 수 있다. 특히 정보통신부가 추진하는 IT839 전략과 관련한 사업들은 네트워크를 통한 신원확인이 필수 요소가 될 것이므로 전자서명이야말로 향후 도래할 유비쿼터스 컴퓨팅 환경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이 자명하다.
따라서 공인전자서명 인증시장 활성화를 통한 공인인증기관의 신기술개발 투자 지원과 새로운 인증기술 수용 등을 통해 공인인증기관의 균형적 발전을 도모하면서 국민이 믿고 쓸 수 있는 전자서명 이용환경을 시급히 조성해야만 한다. 국회와 정부는 이를 위해 전자서명법 개정 논의를 서두르고 있다.
잘 다듬어진 전자서명법은 연인들이 전자우편을 빠르고 안전하게 주고받게 해주며 기업들에는 보다 안전한 전자거래를 보장하여 비즈니스 기회를 확대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정보보호 선진국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
한국정보보호진흥원장 이홍섭 hslee@kis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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