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문화기술, 활용이 중요하다(It’s how you use them)

몇 해 전 회의 참석차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한 독일인 친구가 예고도 없이 필자를 찾아왔다. 우리는 같이 MIT 대학원에서 반도체를 공부했는데 졸업 후 필자는 학자의 길을, 그 친구는 보험업에 종사하며 서로 다른 길을 갔다. 우리는 잠시 까다로웠던 담당교수들에 대해 얘기하며 함께 웃었고, 졸업 후 사회생활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든 것임을 공감했다. 하지만 대화 주제가 컴퓨터로 넘어가자 목소리의 톤이 저절로 바뀌었다.

 그는 한숨을 쉬면서 “맞아, 나는 컴퓨터를 힘들게 공부했지. 하지만 중요한 것은 ‘컴퓨터가 어떻게 작동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활용하느냐’ 하는 것이더라”고 말했다. 그 친구의 의견에 적잖이 동감이 갔다. 과학기술인들은 이와 비슷한 고민을 해오지 않았던가.

 과학기술인들은 디지털과 같은 최신 과학기술이 경이롭다고 생각하면서 실질적 목표라 할 수 있는 상업성에는 어두웠기에 기술 습득에만 주안점을 두고 시장 수요의 파악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기술이란 쉽고 저렴하게 습득할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 마이크로소프트, 픽사, 구글, 렉서스/넥서스 등과 같이 언뜻 보면 컴퓨터 기술이 주력인 것처럼 보이는 기업도 사실은 그 기술을 사업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 사용할 뿐이다.

 기업이 이윤을 유지하고 사업을 튼튼히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과학기술에 대한 우월한 지식이 아니라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그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간략히 말하자면 컴퓨터 시대라 일컬어지는 지금도 중심적 문제는 기술의 습득이라기보다는 커뮤니케이션의 습득인 것이다.

 이런 사실은 우리에게 IT 이후의 차세대 기술이라 일컬어지는 문화기술(CT)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CT는 케이블과 네트워크에 한정됐던 컴퓨터를 인간에게까지 확장해 사람들이 상호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무수한 방법을 제시할 것이다. 또 커뮤니케이션 표준, 언어, 인간과 기계와의 상호작용 그리고 결정적으로 예술과 깊은 연관을 맺게 할 것이다.

 엔지니어들이 숫자에 약한 예술인을 컴퓨터 세대와 맞지 않는 그룹이라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는 지극히 어리석은 태도다. 예술이야말로 무언의 커뮤니케이션 과학이며 상품을 판매할 때나 동료를 설득할 때 또는 경쟁에서 한발 앞서나가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좋은 예로 영화의 흥행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영화음악을 들 수 있다. 영화음악은 고대 그리스 연극의 합창 역할에 상응하는 것으로, 배경에 대한 충분한 설명 없이도 음악의 속삭임은 관객들의 무의식을 자극해 상황을 파악하도록 도와준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수사학과 관련된 예술이 매우 효과적이었음이 판명되기도 했다. 학생들은 수사학만 이해하면 충분하다는 이유로 기술 공부를 게을리하기도 했다. 교실에서와는 달리 사업에 있어서 예술은 컴퓨터의 하위개념이 아니고 그보다 훨씬 중요한 상위개념이라 할 수 있다.

 CT라 함은 컴퓨터를 예술인의 표준에 맞춰서 사람들이 자유로이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윈도와 같은 그래픽 중심의 운용체계나 애니메이션 등에서 눈에 띄는 발전이 있었으나, 필자는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사용자 스스로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과도 자연스럽게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컴퓨터 기반의 음악, 이미지, 언어 등은 아직도 사용자들이 숙달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CT의 주요 과제는 이런 장애를 극복해서 사용자들이 자신의 능력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충분히 표현토록 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일을 가능케 한 사람들은 막대한 이윤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로버트 러플린 KAIST 총장 rbl@president.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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