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포럼]e스포츠를 거목으로

다 같은 e스포츠로 보이지만 한국형과 미국형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먼저 시작된 미국형은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 ‘그 자체’에 집중했다. 넓은 공간에 인터넷에 연결된 수백 대의 PC를 설치해 놓고 보다 많은 게이머가 참여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참여형 이벤트’를 만든 것이 미국형 e스포츠다.

 그에 비해 한국형 e스포츠는 선수와 관객을 정확히 분리했다는 특징이 있다. 선수들이 만들어 내는 게임을 상품화해 대중에게 전파하는 ‘콘텐츠 비즈니스’ 형태가 한국형 e스포츠의 핵심이다.

 지난 99년부터 시작된 한국형 e스포츠는 그동안 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달려왔다. 그 결과 한국형 e스포츠는 유례 없는 성공을 거두었고, 하나의 장르로 확고히 자리잡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게임은 아이들이나 가지고 노는 것’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디지털 세대를 대표하는 신문화의 대표 아이콘’으로 거듭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세계에서 e스포츠가 가장 발달했다는 우리나라 내면을 들여다보면 e스포츠가 완전히 장르화되었다기엔 여전히 석연치 않은 점들이 눈에 띈다. 스스로 만들어 놓은 훌륭한 구조를 종목을 바꿔가면서 그 시장을 무한 확장시킬 수 있는 힘이 한국 e스포츠에는 없다. 1년에도 수백 개 게임이 새로 등장하는 게임판에서 e스포츠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그 형태와 인기를 유지한 채 종목이 선순환되는 것이 필수불가결하다.

 e스포츠가 하나의 장르로 뿌리 내리려면 그 내부 시장에서 해당 장르를 먹여 살릴 충분한 수익이 창출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e스포츠는 전적으로 스폰서 하나에 매달리고 있다. 그토록 눈부신 성장을 해왔건만 7년 전이나 지금이나 늘 빈곤한 수익모델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이는 보다 정확히 말하면 수익모델이 없는 것이 아니고 시장이 충분치 않다고 해야 할 것이다.

 수익모델로 치자면 선수들의 초상권을 이용한 티셔츠를 만들어 팔아 본 적도 있고, 유료 VOD 서비스를 제공한 적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경우에 수익이 비용을 초과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우리나라는 소위 마케팅에서 말하는 자급자족이 가능한 최소한의 ‘내수시장 인구 1억명’에 미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e스포츠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수출만이 살길이다.

 지난해 문화관광부 e스포츠 포럼에 따르면 우리나라 e스포츠 시장 규모는 전체 게임 시장의 5%를 점유한다고 나와 있다. 물론 우리나라 e스포츠 열기는 세계 최고다. 그렇다면 이제 막 발전기에 접어들기 시작한 세계 e스포츠가 우리나라만큼의 위치에 도달한다면 그 규모는 얼마나 된다는 얘기인가.

 세계 e스포츠가 성숙하기 위해 향후 3년에서 5년 정도 걸린다고 가정해 볼 때 2008∼2010년에 세계 e스포츠 시장 규모는 세계 게임 시장의 5%인 5조5000억원에 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금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시피 한 공터에 연 5조5000억원짜리 백화점이 들어선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 선두에 지금 우리나라가 서 있다. 이제 막 발전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한 판에 다른 경쟁자가 없을 리 만무하다.

 알게 모르게 세계 각국에서는 e스포츠의 미래 패권자 자리를 놓고 치열한 물밑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프로스포츠의 꽃이라 불리는 북미 풋볼리그(NFL)의 방송 중계권료는 1년에 2조6000억원이다. 어쩌면 메이저리그보다, NFL보다 더 커질지도 모를 묘목을 우리 손에 들고 있다. 잘 심고 가꾸는 일만 남았다. ◆정일훈 아이스타존 사장 nouncer@istarzo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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