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IT강국과 디지털콘텐츠 규제

이제 한국이 IT 강국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디지털 TV 수상기, 셋톱박스 등의 세계 시장 지배력은 물론이고 케이블TV 보급률도 선진국 수준이다. 향후 브로드밴드 디지털 컨버전스의 발전도 가속도가 붙을 것이며, 휴대폰 및 MP3 시장은 이미 세계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품목이 됐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인터넷 스팸메일, 휴대폰 스팸전화, 각종 디지털 미디어를 이용한 반사회적·반인격적 콘텐츠로 인해 환경오염 이상의 우려에 직면하게 됐다. 인터넷과 휴대폰 등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는 ‘노예적 상황’이 된 현대인에게 정말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음란물, 사생활 침해, 명예 훼손 등에 관한 형법·민법 및 각종 법적 장치를 통한 처벌 조항이 있고, 정보통신윤리위원회 등 각종 제도적 기구가 가동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적절한 대응책이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오히려 지나치게 규제하면 막대한 성장 잠재력을 갖고 있는 IT·콘텐츠산업이 위축될 것이라는 업계의 시각이 지배적이어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특히 국경 없는 글로벌 시대를 맞아 국내 규제만으로는 이런 문제를 간단히 해결할 수 없는 형국이다.

 형법 제243조에는 ‘음란한 문서·도화·필름과 기타 물건을 반포·판매 또는 임대하거나 공연히 전시·상영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한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 제65조 제1항 제1호는 ‘정보통신망을 통해 음란한 부호·문언·음향·영상을 배포·판매·임대하거나 공연히 전시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통부 산하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10여년 동안 내용등급 지정이나 이용자에 대한 등급 관련 정보제고 서비스, e클린 캠페인 등을 통한 자율규제 유도 및 계몽활동, 법적 규제 등을 광범위하게 실시해 왔다. 그러나 해일처럼 밀려드는 각종 디지털 콘텐츠를 감시해 내기에는 역부족이다. 더욱이 기술의 끝없는 발달로 비윤리적 콘텐츠의 유통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 상황이다.

 ‘윤리없는 문화는 망할 뿐이다’라고 말한 슈바이처 박사의 지적처럼 우리나라가 진정한 IT 강국이 되려면 윤리도 함께 발전해야 한다. 우선 당장은 돈 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

 악서가 양서를 결코 이기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17세기 존 밀턴의 말처럼 시장은 자동조절 기능(self-righting process)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방임해서는 안 될 일이다. 디지털 산업이 우리의 정신문화를 풍부하게 하고 책임 있는 콘텐츠로 발전할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으로 시민의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우리나라는 법과 제도를 통한 타율 규제에 의존해 왔으나 점차 업계의 자율 규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정부의 타율 규제는 최후 수단이 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콘텐츠산업연합회 산하 무선인터넷콘텐츠 자율심의위원회의 노력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우리가 진정한 세계적 IT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디지털 문화에 강한 윤리적 가치를 불어 넣어야 한다. 관련 유무선 인터넷통신, 모바일콘텐츠 업체들은 제2 도약을 위해 윤리강령을 스스로 선포하고 지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기업들은 연합해 협회를 만들고 콘텐츠윤리화 사업에 투자해야 할 것이다. 이용자들도 자발적·적극적으로 모니터 활동 등을 통해 감시에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사업체나 정부기구가 더 늦기 전에 양질의 콘텐츠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종사자들의 교육 지원에 앞장서야 한다. 다매체 다콘텐츠 디지털시대, 타율에 앞선 자율 문화가 정착되기를 바란다.

◆변동현 한국방송학회장(서강대 영상대학원 교수) dhbyun@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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