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으로 국내 여론이 뒤숭숭하다. 민족의 정체성과 연계된 민감한 사안이라 인터넷은 온통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에 대한 비판으로 들끓고 있다. 외교적으로 강경 대처해야 한다느니 학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느니 해법도 무성하다. 그러다 보니 총론은 없고 각론뿐이다. 매스컴에서는 입시교육에 희생된 국사 교육의 부재를 책망하며 회초리를 들이대고 있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은 어제 오늘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고구려에 대한 중국의 인식이 최근 30년 전부터 10년 주기로 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데서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상대방이 눈치 못 채게 낮은 포복자세로 고구려사의 철망을 뚫고 들어온 셈이다. 모 방송국이 여러 달 전에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현장르포를 방영한 걸 보면 이런 중국의 움직임을 우리 쪽도 예전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포착해온 모양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한반도 통일 이후의 정치적 상황을 염두에 둔 민감한 문제라 섣불리 나서기 뭣해 관망할 수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우리도 나름대로 철저한 대비책을 세워놓았어야 옳았을 일이다.
조선시대 말 청나라와 국경회담을 하러 간 조선 고위관리는 청국 관리가 제멋대로 측량해서 국경경계비를 세우는 데도 불구하고 아무 생각 없이 백두산 계곡에서 기생을 끼고 권주가를 부르며 흥청망청 술판을 벌였다고 한다. 중국인들이 백두산 한 쪽을 저희 땅이라고 주장하게 된 것도 바로 그 술판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고 보면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신 나간 관리 하나의 멍청한 짓으로 인한 대가치고는 엄청난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에겐 상대방의 속내와 움직임을 간파하지 못하고 우리 멋대로 판단하고 재단하고 행동하는 악습이 있다. 나중에 일이 꼬이면 부랴부랴 상대에게 섭섭함을 드러내며 사태를 수습하느라 허둥지둥 뒷북치는 고질적인 행태를 자주 보인다.
우리의 역사가 남의 잣대에 의해 멋대로 재단된다는 것은 분통이 터질 만한 일이다. 일본과 러시아의 38선 가르기 밀담이나 일제 강점, 남북 분단 등 잘 알려져 있는 현대사는 덮어놓자. 임진왜란사를 보면 이런 기록이 나온다. 바보 황제인 신종(神宗)의 심복 심유경과 퇴각을 앞둔 일본의 장수 소서행장(小西行長)의 화전회담 내용을 보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전쟁이 장기전으로 치닫자 국내 정치 상황이 어려워진 명나라의 속내를 간파한 소서행장은 심유경에게 묘한 제의를 한다. 즉 평양 이북은 명나라가, 그 이남 땅은 일본이 차지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만약 이들의 밀약이 뜻대로 이루어졌다고 가정한다면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임란 때 일본인들의 야심은 한일합방으로 이루어졌고, 청국의 야욕은 북한 붕괴 이후 평양의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한 이번 동북공정에 의해 윤곽을 드러냈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인가.
역사는 그 민족의 정체성이 담겨 있는 콘텐츠의 보물단지다. MS나 야후 등 우리 역사와 문화가 잘못 게재된 외국 사이트가 많다고 한다. 일부 네티즌이 이런 잘잘못을 찾아내 이의를 제기하고 시정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익숙한 우리들이다. 주변 국가에서는 덫을 놓고 앞으로 달아나는데 우리는 속절없이 달려들다가 걸려드는 형국이다. 시치미 뚝 떼고 알고도 모르는 척 열심히 뒷북만 치다 여론이 수그러들면 북채마저 놓아버리는 이 땅의 겉똑똑이들을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제발 똑바로 앞 좀 보고 살자. 일본이 언제 광개토대왕비에 새겨져 있는 ‘임나부 망령’을 앞세워 한반도에서 자신들의 지분을 요구할지도 모를 일이니까.
서용범논설위원@전자신문, yb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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