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되는 프로젝트 쳐다보지도 마!”
중대형 서버 업체를 비롯한 시스템통합(SI) 업체 등 IT 업체의 프로젝트 참여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울며 겨자 먹기’라 할지라도 프로젝트를 어떻게든 수주하려던 모양새였다면 올해는 입찰을 포기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내실 경영을 최고의 덕목으로 꼽는 SI 업체는 물론 서버 및 스토리지 등 중대형 컴퓨팅 진영도 마찬가지다. 다국적 기업의 경우 본사의 판단이 매출도 매출이지만 갈수록 악화하는 수익률을 더 방치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본사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특정 업종이나 수요처에 대한 선정 기준이 엄격해졌을 뿐 아니라 제품 할인에 대한 기준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게 엄격해졌다.
◇상반기 입찰 포기 사태 속출=SI 업계의 불참 등으로 유찰 혹은 지연됐던 정보화 프로젝트는 11억7000만원 규모의 국회 의정참여 포털 구축사업과 19억2000만원 규모의 청와대 e지원시스템 고도화사업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 프로젝트는 비록 사업 규모가 10억원을 넘었고 향후 유사 프로젝트의 준거사이트 활용 가능성에도 SI 업계의 관심을 끄는 데 실패했다. 이와 함께 3억∼4억원 규모로 발주된 전자문서 유통체계 고도화 정보화전략계획(ISP)과 온라인 국민참여 포털 업무 재설계(BPR) 및 ISP 프로젝트도 단일 사업자만이 입찰에 참여, 국가계약법에 의한 경쟁입찰이 이뤄지지 않아 유찰됐다. 또 지난달 14억원 규모로 발주됐던 한국도로공사의 자동통행료징수시스템(ETCS) 2차 시범 프로젝트는 사업자 불참으로 인한 자동 유찰 이후 수의계약으로 사업자 선정 방식을 변경하는 등 홍역을 치러야 했다.
최근 유찰된 서울대의 슈퍼컴퓨터 프로젝트는 모든 서버 사업자들이 고개를 저은 대표적인 사례다. 서울대가 기존 수요처인 데다가 아태 본부 차원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한 한국IBM은 끝내 본사로부터 프로젝트 참여를 승인받지 못했고 한국HP나 한국썬 역시 예산과 규격이 알려지면서 처음부터 포기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공공 기관 프로젝트 외에도 서버 및 스토리지 단독으로 발주되는 민간기업 프로젝트에서도 이런 현상은 마찬가지다. 한국HP는 최근 진행된 A사의 120억원 규모 서버 프로젝트를 포기했다. 과도한 할인율을 본사 차원에서 용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은 상반기에만 금융기관 등 3, 4건의 프로젝트를 포기했다. “믿을지 모르지만 팔면 팔수록 손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는 게 효성 측 설명이다.
◇영업이익 위험수위에 달했다=본 프로젝트가 아닌 BPR 및 ISP 프로젝트의 경우 SI 업체들은 단기적인 수익성보다 향후 추진될 본 사업 주도권 선점을 위한 장기적 포석 차원에서 접근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유찰 현상은 과거와 뚜렷하게 달라진 모습이다. 이에 대해 SI 업계에서는 BPR·ISP 예산 규모가 너무 작은 데다 향후 본 사업에서 얻을 수 있는 수익성도 기대에 못 미칠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일단 SI 업체들의 이런 변화는 제살깎기식 과당·출혈 경쟁으로 인해 수익성 악화를 초래했다는 자성에서 비롯됐지만 서버나 스토리지와 같은 개별 제품을 공급하는 업체들의 변화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시 말해 업체들이 제품을 과거만큼 싸게 공급할 수 없다고 버티는 상황에서 SI 업체들이 손해를 감수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할 이유가 없다는 의미다.
제품 할인을 주저하는 주요 IT 업체들의 변화는 경영지표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기업들이 금융감독원에 신고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IBM의 경우 2002년 1400억여원 수준이었던 영업이익이 작년 780억여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당기순이익 역시 990억여원에서 470억여원으로 줄어들었다. 한국유니시스 역시 영업이익이 170억원대에서 50억원대로 떨어지고 당기순이익도 100억원 규모에서 50억원 미만으로 감소했다. 6월로 회계연도가 끝난 한국썬은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한국후지쯔 역시 70억여원의 영업이익이 한 자릿수대로 떨어진 것은 물론 경상이익과 당기순이익에서 수년 만에 적자를 기록했다. 이 업체 중 일부는 매출이 증가하거나 감소했다 해도 영업이익 감소 수준을 납득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점에서 심각하다. 기업들이 올해와 같은 경기 속에서 예년과 같은 방식으로 영업할 경우 영업이익이나 단기 순이익이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하다.
◇ 이익 중심 영업 방식 강화=업계에서는 경기가 회복되기 전까지 프로젝트 불참 현상은 심화할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기존 고객과의 관계를 비롯한 향후 사업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장기적이고 안정적 성장 토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익 중심의 사업이 불가피하다는 게 전반의 인식이다.
이 때문에 SI 업체들은 프로젝트의 시작·실행·완료 등 전 단계에 걸쳐 인원·공정·원가·이익·위험 등은 물론 사업적 가치와 이익성 등을 이중·삼중으로 심층 분석, 참여를 결정하는 프로젝트 관리체계를 가동하는 등 수익성을 높이는 방안에 몰두하고 있다.
다국적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본사 차원의 제품 할인이나 프로젝트 승인이 더욱 엄격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문제는 다국적 기업 본사가 매출 목표를 줄이지 않은 채 수익률만 챙길 경우 매출 규모에 맞는 지사 운영 요구에 따른 인위적인 구조조정이 불어닥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중대형 업체들의 고민은 SI 업체들보다 더 심각할 것으로 보이고 있다.
신혜선·김원배기자@전자신문, shinhs·adolf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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