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산행길에 나선 김 과장은 자연속에 파묻히는 여유로움도 잠시, 며칠 전 구입한 복권당첨 소식이 궁금해졌다. 산행을 멈추고 핸드폰 겸용 위성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단말기를 켰다. 모 공중파 방송이 전해오는 추첨결과를 지켜봤다. 또 ‘꽝’이다. 실망을 안고 이번엔 깊은 산속으로 강행군을 시작하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한두시간쯤 흘렀을까. 엄청나게 쏟아부은 비 탓에 김 과장 일행은 한 발짝도 떼지 못한 채 산속 어디선가 긴급 구조를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때마침 핸드폰도 불통이다. 김 과장은 자신의 위성DMB겸용 단말기로 재난방송을 보며 구조대가 근처로 접근했음을 일행에 알리고 구조의 손길이 닿길 기다렸다.
‘내손안의 TV, 나만의 방송서비스’,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서비스가 개인형 방송시대를 개막시키면서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다. DMB는 방송 공간·매체의 한계로부터 벗어나 시·청취자들에게 보다 다양한 방송서비스를 향유하게 해주는 휴대형 방송이다. 사람들에겐 전통적인 매체환경의 변화를, 공익·문화적 관점이 지배적이었던 방송계엔 산업적 의미를 던져주는 신생 미디어다.
올 하반기께 모습을 드러낼 DMB 서비스는 사실상 지상파 3사의 독과점 구조로 산업적 특성을 지니기 어려웠던 기존 방송·언론시장은 물론이고 인접 산업영역인 통신, 나아가 온·오프라인 콘텐츠를 아우르는 문화산업 전반에 지각변동을 예고했다.
DMB는 한마디로 이동중이나 고정된 장소에서 핸드폰·차량용 등 개인형 단말기를 통해 CD 수준의 음질과 데이터·영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지털방송이다. 전송 수단에 따라 지상파DMB와 위성DMB로 구분된다. 쉽게 보면 지상파 DMB는 디지털TV와 유사한 방식으로 디지털방송장비를 활용해 개인 휴대형 단말기에 방송을 제공하는데 비해, 위성DMB는 위성과 지상중계기를 통해 디지털방송을 서비스한다. 위성DMB는 해당 주파수로 할당된 25㎒ 대역을 통해 총 40개 가까운 다양한 채널을 운용할 수 있다. 위성DMB 전문업체를 표방한 티유미디어는 지상파TV 재송신 중심의 비디오 채널 11개, 음악과 뉴스 중심의 오디오 채널 25개, 각종 정보서비스를 위한 데이터 채널 3개를 운용한다. 월 1만2000∼1만5000원 정도의 수신료와 가입비 2만원, 광고 등이 사업 모델이다.
지상파 DMB는 이르면 하반기 오디오 방송서비스에서 출발한뒤 내년께 비디오 방송서비스로 옮겨갈 전망이다.정보통신부가 밝힌 TV 채널 12번과 8번, 총 12㎒ 대역을 6개 사업자가 나눠가지면 각각 오디오 채널 2∼3개, 비디오 채널 최대 2개 정도가 고작이다. 지상파 DMB의 수익원천은 광고에만 의존하는 모델이다.
지상파 및 위성 DMB가 갖는 산업적 의미는 그 자체보다는 전후방 연관효과를 고려할때 더욱 크다. 지난해 한국언론학회의 추산에 따르면 위성DMB 도입으로 인한 생산유발 효과가 오는 2012년까지 10년간 무려 9조원에 이른다. 부가가치 유발 효과도 6조3000억원, 고용효과는 년간 누적 18만5000명에 이르는 등 침체한 우리 경제에 새 활력소를 불어넣을 것이라는 기대다. 최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도 오는 2005년부터 2010년까지 6년간 DMB가 가져올 국민경제 파급효과가 무려 14조69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ETRI는 CDMA에 이어 DMB가 향후 국가 IT산업을 이끌 차세대 성장동력이라며 이 기간 고용유발 효과는 총 16만3400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DMB 장비 또한 신성장 산업으로 각광받을 전망이다. ETRI는 DMB 단말기 시장이 연간 1400만대 이상의 휴대폰 내수시장을 촉발, 오는 2010년께면 연간 1조3000억원 규모에 이른다는 추산했다.
DMB는 도입초기만해도 비교적 단순한 발상에서 출발했다. 국가적 차원에서 주파수 자원의 효율성을 높이고 지상파·위성·케이블TV의 디지털 전환작업이 본격화한 상황에서 낡은 매체로 뒤처진 라디오 방송까지 디지털화하겠다는 시도다. 선진 각국이 라디오방송의 디지털화를 위해 디지털오디오방송(DAB)을 도입했던 것과 마찬가지 배경이었으나, 우리는 ‘멀티미디어’로 한발 더 나아갔다. 해외에서 DAB에 안주했으나 우리는 서둘러 DMB를 도입해 통신산업의 CDMA 신화에 버금가는 차세대 방송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욕인 셈이다.
지상파DMB의 경우 정통부는 각 사업자에게 두개의 TV 채널(12번, 8번)을 분배하고, 1개의 아날로그 채널이 아닌 다수의 디지털 채널을 운영하는 멀티플렉스 사업자를 복수로 선정하겠다며 당초 계획보다 훨씬 무게를 싣고 있다. 방송계는 KBS·MBC·SBS 등 지상파 3사는 물론 YTN·디지털스카이넷 등 프로그램공급사(PP), 정보기술(IT) 분야 전문업체들인 무선인터넷기업 컨소시엄과 솔루션 전문기업들의 협력체인 MMB 컨소시엄 등도 사업권 획득 채비를 서둘렀다.
위성DMB 시장엔 이미 지난 2001년부터 SK텔레콤은 일본 MBCO측과 공동으로 위성망궤도(주파수 대역)를 확보했으며, 전문업체인 티유미디어는 오는 7월 세계 최초 상용화를 향해 피치를 올렸다. 티유미디어 단일 사업자 구도로 극심한 진통을 겪었던 위성DMB 사업은 최근 MBC·KT그룹 등이 출자 참여의사를 밝혀, 지상파·이동통신·장비업계를 아우르는 범 그랜드 컨소시엄 형태로 발전했다.
DMB가 최근 집중조명을 받은 것은 지난 3월 개정 방송법이 극적으로 국회를 통과한 사건도 한몫하고 있다. 당시 KBS 수신료 분리징수 문제를 놓고 여야간 첨예한 대립으로 공전을 거듭하던 개정 방송법은 ‘국가경제 의 신성장 엔진’이라는 명분을 통해 막판 극적인 합의를 도출했다.
최근 정보통신을 비롯한 국내 IT 산업 전반이 극심한 정체에 접어들어 새 돌파구가 필요한 우리에게 DMB는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했던 수종산업이다.
주무부처·기관인 정통부와 방송위는 다소 불투명한 도입일정에도 불구하고, 연내 사업자 선정을 목표로 방송법 시행령 개정을 비롯해 주파수 할당 등 세부 정책을 조속한 시일내 마련키로 했다. 양 기관의 정책적 시각이 다르고, 사업자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할 어려움이 남아있지만 신생산업 육성이라는 대의보다 앞설 수 없다는데 의견을 같이했기 때문이다. 방송위는 위성DMB가 이동전화시장 등 타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방향으로 정책 방향을 수립하고, 지상파DMB의 경우 지상파 디지털TV 전송방식 논란을 매듭지은뒤 최종 입장을 수립키로 했다. 정통부는 지상파DMB 시범서비스와 더불어 또 위성DMB를 위해 곧 주파수를 할당하고 데이터방송 표준도 연내 제정할 예정이다.
일정대로라면 오는 10월 지상파 DMB 방송국을 최종 허가하고 하반기에는 위성DMB 주파수 할당 및 방송국 허가, 연내 12월 데이터방송 표준제정을 마무리한다.
DMB 시대가 어느덧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왔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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