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용 LG텔레콤 사장
이동통신 가입자 3500만명, 초고속 인터넷 사용률 세계 1위. 지난 10년간 우리는 IT분야의 눈부신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왔으며, 이는 수많은 사업자간 치열한 경쟁의 산물이라 볼 수 있다. 더불어 소비자 또한 저렴한 요금으로 최고 수준에 이르는 양질의 서비스를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눈부신 발전의 그늘에서 경쟁이 죽어가고 있다. 두루넷·온세통신이 그러했으며, 신세기·한솔엠닷컴 또한 흡수·합병되는 운명을 맞았다. 그 결과 통신시장에서 유선을 대표하는 KT와 무선을 대표하는 SK텔레콤만이 점점 더 비대해지고 있다. 가입자의 쏠림 또한 가속화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필자는 지난 5년간 전쟁터와 다름없는 이동통신 시장에서 후발주자로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고민하고 경쟁력을 갖추는데 힘써왔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엄청난 시련과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그때마다 정부에 달려가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무슨 이유에서 후발 사업자가 이렇게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현상이 몇몇 후발 사업자에게만 일어나는 것이라면 경영자의 책임으로 몰아갈 수 있겠지만, 지금처럼 대다수의 후발 사업자가 공통적으로 겪는 것은 경영자의 잘못이라기보다 다른 무엇인가가 문제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아마도 그 해답은 통신시장에 경쟁이 도입된 후 선·후발 사업자간 경쟁 환경을 되짚어 보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경쟁을 도입한 선진국의 경우 후발사업자에게는 주파수 배분, 로밍 및 접속료 정책, 유통정책 등 전 분야에서 쏠림현상을 방지하는 종합적이고도 체계적인 정부의 노력이 뒷받침 되어왔다. 우리는 어떠하였는가. KT와 SK텔레콤은 모두 국영기업으로 출발했고, 경쟁 도입 당시 이미 국가자본으로 인프라와 경쟁력을 갖춘 상태였다.
그러나 ‘통신산업의 성장’이라는 이름아래 후발사업자는 제도적 뒷받침없이 시장에 내맡겨 졌으며, 선·후발 사업자간 역차별적 경쟁 하에서 사업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약탈적 경쟁’ 환경에서 민간자본으로 만들어진 후발사업자들은 고사하게 된 것이다.
국내 통신시장에서 약탈적 경쟁에 의해 경쟁환경이 훼손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동통신산업이다. 첫째, ‘요금의 약탈’이다. 소비자는 단말보조금, 멤버십 등 이동전화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한 초기 진입 비용부터 금전적 효과가 있는 모든 혜택을 요금으로 인식하고 있다. 지배적 사업자는 오랜 기간 동안의 독점이윤을 통해 후발 사업자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돈’을 무기로 한 경쟁을 촉발시켰다.
둘째, ‘유통채널의 약탈’이다. 전속대리점은 타사 상품을 다루지 못하게 했으며,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리베이트를 2차점에 제공하여 유통시장을 장악했다. 원가 이하의 싸움판에서 후발사업자들은 속수 무책이었다.
셋째, ‘단말기 공급의 약탈’로 지배적 사업자는 국내 단말기 시장의 60%를 차지하는 삼성전자 단말기를 차별적으로 독점하고 우선공급을 주장하여, 단말기 라이프 사이클이 6개월인 시장에서 후발사업자에게는 3개월이상 늦게 출시하게 만들어 단말기 경쟁력을 상실하게 하였다.
지금 정부는 정체상태에 놓인 통신산업의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신성장동력’이란 단어로 대표되는 IT산업의 신규 시장 발굴과 서비스 고도화를 산업진흥 정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신규 서비스에 투자할 여력을 가진 사업자는 KT, SK텔레콤 정도에 불과하며 특단의 경쟁 환경이 갖춰지지 않는 한 가입자의 쏠림현상이 더욱 심해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단기적으로 투자 활성화는 꾀할 수 있겠으나,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결국 경쟁을 죽이고 지속적인 성장 또한 어렵게 할 것이다.
그동안 통신산업 성장의 원동력은 다름 아닌 ‘경쟁’을 통해서였다. 경쟁이 죽어가고 있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정부에 산업진흥 정책과 경쟁 정책을 독립적으로 다루는 조직과 인력을 두어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양자의 인위적인 충돌을 만들어 이를 조율해나가는 과정을 통해야만 정부가 추진하는 산업진흥정책과 경쟁정책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으며, 장기적이며 지속적인 통신산업의 발전을 이끌어 내리라 믿는다.
<남용 LG텔레콤 사장 ynam@lg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