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2.7인치의 함정

 최근 매우 재미있으면서도 상징적인 사건이 있었다. 정통부가 PDA폰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하면서 PDA폰의 기준을 화면크기 2.7인치 이상으로 못박은 것이 그것이다.

 PDA폰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키로한 것은 정말 다행이다. 휴대폰과 달리 PDA는 대부분 중소기업들이 영위해왔다. 통신사업자들의 지나친 과열경쟁을 막기 위한 정부의 보조금 금지조치는 PDA 중소기업들을 고사위기로 내몰았다. 고래등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이었다. 이번 보조금 지원조치는 이들에게 생명수와 다름없다.

 이같은 뜻깊은 조치를 두고 굳이 재미있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숨어 있는 비화 때문이다.

 정부의 발표 이전 PDA폰에 대한 기준을 놓고 삼성전자과 LG전자는 치열한 물밑 대결을 펼쳤다. LG전자는 화면크기 2.7인치 이상을 PDA폰으로, 미만제품을 스마트폰으로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화면크기보다는 터치스크린이 있는 제품을 PDA폰으로, 그렇지 않은 제품을 스마트폰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굳이 화면크기를 판별기준으로 삼는다면 2.7인치가 아닌 2.5인치 이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과는 LG의 멋진 승리로 끝났다. 이번 만큼은 삼성이 완패했다. 진대제 장관이 직접 화면크기 2.7인치 이상 제품을 PDA폰으로 한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했기 때문이다.

 PDA폰과 스마트폰은 디지털컨버전스라는 도도한 물결 속에 나타난 이 시대의 대표적 산물이다. 이번 정통부의 판별 기준은 정부차원의 공식적인 첫 잣대라는 점에서 결코 웃어 넘길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적지 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PDA폰과 스마트폰의 판별기준이 쟁점이 된 것 자체부터가 본질과는 무관하다.

 현실적으로 두 제품의 판별 자체는 무의미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제품 모두 이동통신단말기와 휴대용 정보기기라는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지녔다. 문제가 된 것은 정부가 PDA폰에 대해서만 보조금을 지급키로 했기에 발생됐다. 물론 정부의 입장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번 조치는 휴대폰의 과열경쟁을 방지한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PDA 중소기업을 보호하려는 고육지책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 보면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이번 쟁점의 주역이 삼성과 LG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번 쟁점은 두 메이저간의 치열한 이해다툼으로 불거졌다. LG전자는 아직 2.7인치 미만의 제품을 만들지 않고 있는 반면, 삼성전자는 조만간 출시할 예정으로 있다. 보조금 지급대상이 2.7인치 이상이냐 아니냐는 두 회사의 이해와 직결돼 있다.

 2.7인치가 판별기준이 된 또 다른 이유도 씁쓸하다.

 화면크기 2.7인치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전략적 기준에 불과하다. MS는 휴대용 정보기기의 OS로 포켓PC와 스마트폰 두 가지를 다 보유하고 있다. MS는 두 가지 제품이 시장에서 서로 충돌하지 않게 포켓PC의 화면크기를 2.7인치 이상으로 제한해 놓았다. PDA OS로 MS의 포켓PC 지배력이 워낙 강하다 보니 대부분의 PDA는 화면크기 2.7인치 이상이다. 팜이나 심비안 등 다른 OS는 화면크기를 제한하지 않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업계나 정부가 이 사실을 모르지 않을 텐데 굳이 MS의 기준을 따른 것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조만간 MS가 포켓PC의 화면크기 제한을 2.2인치로 내리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칫 정부의 이번 판별기준이 국제적인 망신거리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디지털산업부 유성호 부장 shyu@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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