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개최된 지구정상회담은 환경문제를 지역적·국지적 문제에서 범지구적 문제로 전환시켰다. 즉 환경문제가 인류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범지구적 문제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지난 십여년 동안 지속가능성을 구현하기 위한 경제적 유인책 등 다양한 환경관련 정책이 도입되고 있다. 근자에 들어 특히 주목할 부분은 기업의 생산활동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각종 환경규제 정책의 도입에 있다.
EU의 ‘폐전기·전자기기지침(WEEE)’ ‘제품에 대한 친환경설계규정(EuP)’ ‘위험물질 사용제한지침(RoHS)’ 등 법안은 직접적으로 우리 전자산업의 경쟁력에 직접적인 걸림돌이 되고 있다. 다행히 정부 및 기업을 중심으로 적절한 대응을 준비해 이번의 격랑을 넘어갈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그러나 제2, 제3의 환경규제 파고가 준비되고 있다. 왜 기업이 대응하기 어려운 이러한 환경규제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가?
첫째, EU를 중심으로 미국, 일본 등에서 환경문제가 인류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한다는 확고한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효과적인 환경정책은 사전 예방과 확장된 기업책임(EPR)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기존의 환경정책은 환경문제가 발생한 경우 해당 지역의 배출허용 기준을 강화하고 환경처리설비를 설치해 해결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정책 입안자들은 이것이 임시 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표출된 환경문제는 하나의 증상일 뿐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또 다른 환경문제로 전이된다. 이것이 작금의 변화된 환경정책과 어떻게 연관되는 것인가? 예를 들어, EU에서는 전기·전자 폐기물 발생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함으로써 발생하는 환경문제를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 것인가?
매립장 및 소각장을 신설하는 것이 기존 환경정책이었다면 현재의 정책은 근본적으로 폐기되는 전기·전자제품의 발생량을 줄이는 것이다.
현재의 환경정책은 예를 들어 단순하게 제조자·수입업자가 제품의 재활용률을 높이도록 하는 형태에서 제품설계를 변경하여 폐기되는 제품의 양을 근본적으로 저감하도록 하는 형태로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변화하고 있는 전자제품 관련 환경정책에 우리 전자업계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첫째, 지속 가능한 생산과 관련된 기초체력을 굳건히 해야 한다. 즉 제품의 환경성을 평가하는 전과정평가(Life Cycle Assessment:LCA)기술의 구축, 유해물질 정보 등과 관련된 국가 기초 데이터의 축적, 친환경 공급망 관리 및 친환경 제품설계·개발(에코디자인) 등의 기법 개발 및 적용, 재활용 기술 및 무연 소더링 기술 등의 원천기술 개발 등이 요구된다.
둘째, 지속 가능한 사회는 지속 가능한 생산과 소비를 통해서 가능하다. 즉 지속 가능한 생산으로 제공되는 제품(혹은 서비스)에 대해 지속 가능한 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가 존재함으로써 가능하다. 따라서 소비자와 생산자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녹색구매, 환경라벨 등의 제도 구축 및 시행이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환경관련 국제표준 동향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현재 우리는 표준의 시대에 살고 있다. 아무리 기술적으로 앞서더라도 국제표준 경쟁에서 뒤쳐지면 시장에서 도태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현재 환경분야에서 표준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친환경제품 설계·개발에 대한 표준은 EU의 EuP법령으로 인해 그 파급 효과가 지대하다.
기회와 위기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환경 이슈에 대한 적극적 대응과 주도적 역할은 환경이 경쟁력인 시대에 또 다른 기회로 작용할 것이다. 한국의 2만 달러 시대 진입 장벽이 환경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획기적 도약의 전기가 환경을 통하여 실현될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중국의 가격 경쟁력과 일본의 기술 경쟁력이라는 상황에 놓인 한국의 입장에서 환경 경쟁력이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건모 아주대 환경·도시공학부 교수kunlee@aj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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