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오경수 시큐아이닷컴 사장(1)

[결단의 순간들]오경수 시큐아이닷컴 사장

시큐아이닷컴의 문을 연지 5일 후인 2000년 4월 1일 나는 APEC 회의 참석 차 서울에 온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박사를 만나게 됐다. 토플러 박사는 현재의 디지털혁명은 시작에 불과하며 정보화의 진전은 멈출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정보보안 분야 대표로 초청돼 토플러 박사와 1시간 30분 남짓 디지털 혁명의 의미와 한국 기업의 대응방안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내내 머릿속에 시큐아이닷컴의 창업 결심을 내리던 때가 문득 떠올랐다.

 나는 86년부터 93년까지 8년 동안 삼성구조조정본부에서 정보관리와 정보센터 등을 담당했다. 이때 정보를 관리하며 터득한 것이 정보는 나눌수록 커진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보안이 잘 유지된다면 많은 사람에게 정보를 개방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당시는 회사 생활을 통해 얻게 된 정보를 ‘노하우’라는 미명 아래 자신만 소유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이에 비해 나는 ‘모든 정보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볼 수 있도록 공유해야 한다’는 주장을 줄기차게 펼쳤고 그 전제는 ‘완벽한 보안의 유지’라고 강조했다.

 이렇게 이른바 정보 공유 전도사로 나서다 삼성 인트라넷 개발을 맡게 되면서 정보보안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더욱 깊어졌다. 오늘날의 인터넷 개념으로 당시 개발한 것이 ‘Topics’였는데 현재 삼성 인트라넷인 ‘Single’의 전신이다. 비록 정보화에 일찍 눈을 떴다 해도 삼성이라는 대기업에서 정보담당 전문가로 안정된 생활을 하다가 미래가 확실치 않은 벤처 세계로 뛰어든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삼성미주본사 정보총괄업무와 에스원에서 정보사업 업무를 담당하며 체험을 통해 배웠던 것이 바로 ‘정보보호’였다. 인터넷 시대가 성숙되고 정보화가 진전될수록 가장 중요한 인프라로 부각될 것임에 틀림없다는 믿음이 더해갔다.

 99년 말부터 2000년 초에는 자고 일어나면 보안업체가 한군데씩 생긴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보안업계가 양적인 팽창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삼성 관계사의 정보보안 인력들이 대거 벤처로 유출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을 보다 못해, 필자가 깃발을 들었다.

 ‘실력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사고 한번 쳐보자’라는 필자의 설득에, 많은 인재들이 모여들었다. 그 당시 팽배했던 벤처 창업에 의한 한탕주의가 아니라 ‘정보보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세계 최고가 되어 보자’라고 모여 준 그들을 보며 무한한 감동을 느꼈다.

 시큐아이닷컴 설립을 위해 내렸던 나의 첫 번째 결단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인터넷 발달에 따른 정보화 역기능을 막기 위해 모여든 우리 모두의 사회적인 사명감의 결실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깃발 아래 모인 임직원들의 믿음이었다.

ceo@secui.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