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십자군

 중세 십자군운동(1096∼1270)의 가장 큰 대의명분중 하나는 예루살렘과 예수의 성묘를 이슬람으로부터 탈환하는 것이었다. 표면적 이유야 어쨋든 당시 서유럽의 정치·종교·사회를 재편하려는 교황과 실력자의 의도가 십자군운동의 이면에 숨어있음을 부인키 어렵다.

 우르바누스 2세가 내세운 십자군운동 시작 시점은 이미 중세기의 약탈과 상호전투를 보였던 제후간, 기사간, 기사와 농민간 신분질서가 안정되는 등 혼돈이 봉합되려는 때였다.

 1095년 11월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성전을 선언하면서 7세기 이래 이슬람인에게 넘겨져 있던 예루살렘을 되찾자고 선언했다. 우르바누스 2세는 모든 참전자들의 죄가 사해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역사는 십자군 원정이 성지탈환 본래의 명분찾기는 물론 세속적 약탈로 물들어 있음을 말해준다.

 1865년 영국의 목회자인 윌리엄 부스는 산업화가 한창이던 영국의 빈자들을 위해 빈민가에서 기독교 선교회를 세운다. 이는 1878년 구세군으로 명칭을 바꾼다. 구세군은 사랑과 복음으로 빈민들의 영혼과 실생활까지 구제하자는 기독교의 한 교파다. 이후 부스의 구세군 정신은 전세계에 퍼지기 시작했다. 1891년 겨울 미국. 폭설이 쏟아졌던 몹시도 추웠던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구세군 사관 조셉 맥피가 세계 최초로 자선냄비의 첫 종을 울렸다. 그는 추위속에 크리스마스를 맞이 할 1000명의 도시 빈민을 생각하며 커다란 냄비를 들고 거리로 나가 사랍들의 도움을 요청했다. 그의 걱정과는 정반대로 온정의 손길이 답지했다.

 구세군은 1908년 우리나라에도 상륙했다. 1928년부터 해마다 계속되던 자선남비가 올해도 어김없이 지난 4일부터 전국에 등장했다. 경제가 IMF체제 때보다 나을 것 없다지만 해마다 추운 겨울을 맞아 많은 이들의 온정을 한데 모으는 상징으로 구세군만한 것도 없을 것이다.

 현재 구세군은 세계 109개국에서 집이 없거나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사회적 혜텍을 입지못한 사름을 돌보는 활동을 하고 있다. 새삼 십자군의 성지 탈환보다도 더 숭고한 사랑의 십자군이라 할 구세군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이재구 국제기획부장 jk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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