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영솔루텍(http://www.jysolutec.com)은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전자부품·금형제조업체다. 금형을 기반으로 전자통신·반도체 부품분야로 사업을 다각화중인 이 회사는 지난 4월에 착수한 IT마스터플랜 수립과 전사적자원관리(ERP)시스템 구축을 위한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다. 다음달 말부터 본격적인 ERP 가동에 들어가면, 영업·생산·물류·구매·품질·설비·재무 등의 전과정을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유승환 전략기획담당 이사는 “매년 전체 매출(올해 1300여억원 예상)의 1% 이상을 IT부문에 신규 투자하면서 사출금형업계에서는 IT화가 가장 앞섰다”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초일류 엔지니어링 회사를 목표로 내년 초에는 고객관계관리(CRM)와 공급망관리(SCM) 시스템 도입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제조용 장비업체인 신성이엔지는 올해 들어 e비즈 정보전략 및 아키텍처를 수립하고 정보시스템 구축작업에 뛰어들었다. 기존에는 단위 업무만을 전산화해 각 부서별 연계가 이뤄지지 않았다. 또 공급업체 및 고객들과도 온라인 정보공유가 없어 불편했다. 신성이엔지 관계자는 “올해 ERP 시스템 구축으로 부서간 신속한 정보 공유와 의사결정이 이뤄져 업무효율을 높이고 각 협력 업체들과도 실시간으로 발주·납품 현황을 주고 받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제조업분야 대기업은 물론 중견, 중소기업들도 모든 프로세스를 전자화하는 ‘IT화’에 매달리고 있다.
인사·재무·회계·관리뿐 아니라 개발·조달·생산·물류·판매·서비스 등 사내외 업무흐름을 실시간으로 네트워킹함으로써 경영 효율성을 높이는 데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들은 부품조달에서부터 사후서비스까지 전분야를 관리하는 ERP의 구축 수준이 높아졌다. 그동안 중견·중소기업들도 기초 소프트웨어를 갖추는 단계를 넘어 사내 정보시스템을 체계적으로 정비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정부차원에서도 기업 내부와 산업전반에 IT인프라 구축을 지원함으로써 기업의 생산성 증대는 물론 ‘e전이(transformation)’를 도모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지식정보시대로 진입하면서 단순히 노동량 투입이 아니라 기술혁신과 생산성 증대에 의해 구동되는 고부가가치형 사업구조를 만들기 위한 포석이다. 국내는 물론 글로벌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시스템의 자동화와 통합화가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IT·경영컨설팅 및 아웃소싱회사인 메타넷의 함영호 상무는 “중소·중견기업들은 IT화가 대세인 줄 알면서도 자금부족 등의 이유로 IT투자를 주저해 왔지만, 정보체계를 갖춰놓지 않으면 국내는 물론 해외 업체와의 경쟁에서 낙오된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이제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 규모를 따질 것 없이 제조업체들의 IT화는 하드웨어와 솔루션 구축에 치우쳤다. IT솔루션의 커스터마이징이 이뤄지지 않은데다가 업무 프로세스 변화가 동반되지 않아 IT투자의 실효를 제대로 거두지 못하고 있다.
IT·경영컨설팅회사인 베어링포인트 고영채 사장은 “국내 제조기업과 제조산업의 경쟁력은 하드웨어·네트워크 용량증대 등 정보시스템 개선과 같은 외형적인 정보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별기업의 운영 프로세스를 변화시키고 조직의 문화를 혁신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제조분야 기업정보화 수준이 전반적으로 기업규모와 비례하면서 뚜렷해진 기업간 정보격차도 해결 과제다. 기업정보화지원센터가 상반기 실시한 기업정보화 수준 조사 결과, 매출액 규모 1조원 이상 기업들과 1000억 미만 기업들의 정보화지수 차이가 지난해 23.8에서 올해 27.7로 차이가 더 커졌다. ERP·지식관리·전자결제·원격교육 시스템 도입에서도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의 절반 수준이다.
임춘성 기업정보화지원센터장은 “우리나라가 정보인프라는 세계적인 수준을 갖췄지만 기업내, 기업간, 기업과 고객 사이의 정보유통과 활용은 아직도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중소기업 IT화 사업을 펼치고 있다. 산업자원부 관계자는 “우리나라 고용의 70%, 수출의 40% 가량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IT화는 지식정보화의 토대이자 출발점”이라며 “중소기업의 IT화를 통해 대기업을 비롯한 모든 기업이 유기적으로 연계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되도록 정책을 펴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아직 초기수준인 기업간 정보화 분위기를 확산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는 중소기업들이 개별적으로 정보시스템을 갖춘다 하더라도 동종업계 또는 전산업에 걸친 정보화가 진전하지 않으면 전체 산업의 e전이 속도가 늦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제조업계의 정보화가 기업 경영의 네트워킹을 위한 실행도구로서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다.
제조업분야 IT·경영컨설팅을 수행중인 이명헌 오픈타이드코리아 이사는 “최근 가치 사슬(value chain)보다 복잡한 가치 거미줄(value web)의 모습을 얼마나 최적의 조합으로 묶는가가 중요해졌다”라면서 “제조업체들은 정보화 투자와 함께, 고객 협업을 위해 구매 공급업체와도 일련의 통합적 체계를 갖추기 위한 IT투자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정보화 투자에 다소 소홀했던 중소·중견기업들은 대기업의 가치 거미줄에 최적화된 파트너로서의 자격 요건을 갖추기 위해 ERP를 비롯한 정보화를 생존 전략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프라인 제조기업의 ‘디지털 컴퍼니화’는 개별기업 혼자되는 것이 아니다. 고객 및 공급업체 등 공급망의 틀 속에서 이뤄진다. 국내외 파트너와 협업하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IT화를 채택할 수밖에 없다. 제조기업에게 IT화는 더이상 ‘선택’이 아니라 ‘생존전략’이다.
<특별기획팀>
◆ `삼성전기` 사례
강호문 삼성전기 사장은 한 달에 한 번꼴로 해외 사업장 8곳의 법인장을 사장실로 호출, 오전 회의를 갖는다. 사장실에 갖춘 영상회의시스템을 통해서다. 시간차로 유럽 지역 법인장의 경우 새벽녘에 출근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으나 지난해 7월부터 시작한 실시간 영상회의 덕분에 품질 개선에 대한 논의를 심도있게 벌여 해외사업장별 품질 격차를 좁히고 있다.
삼성전기는 이처럼 제조에 IT를 접목한 ‘정보경영’을 바탕으로 세계 1등 품질제품을 만드는 유수 종합부품 업체로 도약했다. ‘제조실행시스템(MES)’을 통해 국내외 전사업장이 품질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나눠 비용절감·품질혁신 등의 효과를 거뒀다.
이 회사 품질경영기획그룹 이영규 부장은 “MES를 구축하기 전엔 고객이 원자재를 A에서 B로 바꿔달라 할 때 해외 사업장간 정보 격차로 해당 원자재를 제때 소진하지 못해 재고부담으로 남거나 멋모르고 사용해 고객 불만이 쌓이곤 했다”고 밝혔다.
사정이 달라졌다. 국내외 사업장에서 생산·출하되는 130여개 제품의 수율·고객체감불량률 등을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파악한다. 게다가 ‘글로벌품질관리매뉴얼’에 맞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근로자들이 작업에 임해 중국과 필리핀 사업장에서 만든 튜너의 품질은 모두 동일한다고 한다.
삼성전기는 한 발 더 나아가 60여억원을 투자, 내년 상반기 목표로 공급망관리시스템(SCM)을 구축중이다. 이 시스템엔 MES를 포함하게 돼 사실상 해외 곳곳에 흩어진 공장 품질의 현황을 한눈에 확인하는 글로벌 통합 품질관리 시스템이 탄생한다.
해외 사업장의 현지화 정착을 위해 원자재를 현지에서 대부분 충당하는 삼성전기는 원자재의 품질 확보를 위해 글로벌 통합 품질관리 시스템으로 중국 등 해외 사업장과 양방향으로 품질정보를 나눌 계획이다.
이영규 부장은 “내년 상반기 이후엔 수주→생산→선적 및 운송→납기→고객만족까지 모든 단계를 투명하게 파악해 지역간 정보격차가 사라진다”며 “해외 사업장 생산비중이 7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실시간 정보 경영은 완벽한 품질을 보장, 고객만족 기업으로 발전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강호문 사장은 “부품 회사의 경쟁력은 바로 완벽한 품질에서 나온다”며 “삼성전기를 1등 제품을 만드는 종합부품업체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
◆ 인터뷰 - 김문호 네모솔루션즈컨설팅 사장
“IT를 통한 제조업의 생존전략은 단순히 정보시스템 도입으로 국한되는 게 아니라, 끊임없는 기능(스킬)과 가치 개선을 위한 연속적인 경영혁신을 동반해야 합니다.”
제조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기업가치 개선을 위한 IT 컨설팅을 수행해온 김문호 네모솔루션즈컨설팅(http://www.nemopartners.com) 사장은 “제조업체들이 가치 중심의 정보화를 효과적으로 추진했어야 하는데, 그동안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활동들이 부족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김 사장은 “먼저 IT비전과 투자효과를 명확히 하고, 둘째 효율성 극대화 차원의 IT시스템을 도입하며, 셋째 효율적 IT 추진을 위한 조직 및 운영 프로세스 향상과 IT인프라를 구현하는 방향으로 접근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진단에 따르면 IT투자를 통해 아주 성숙된 기업역량을 발휘하는 제조업체들은 상당히 진보적이고 글로벌 수준에 도달한 반면 IT분야에서 덜 성숙된 기업들은 경험에 의존해 업무를 처리하고 수작업으로 정보를 관리하는 단계에 머문다. 또 IT에 투자한 제조업체라도 일부는 기능 중심의 정형화한 프로세스에 따라 업무를 처리한다. 반면, IT도입으로 성숙된 기업들은 각 부문간 정보를 시스템적으로 통합해 연계 처리하는 단계(내적 통합, ERP시스템 도입)에 진입했으며 일부 대기업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최적화 내지는 가치 창출 단계로 전환하기 위해 끊임없는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영세 중소기업들의 최고경영자들은 IT투자 대비 효과에 대해 회의적인 데다 투자여력도 없다. 김 사장은 “IT를 통한 가치 개선의 효과가 점점 하나씩 이뤄진다면 중소기업들도 IT투자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 부품제조가 주류를 이루는 국내 중소기업들의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정보화 추진을 위해 정부와 기업 차원의 전략적 실행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업·경영전략부터 IT 및 업무 효율성 향상을 위한 실행전략 차원의 ‘총체적인 기업 변환’이 시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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