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우려되는 미국의 전방위 압력

 한국시장을 겨냥한 미국의 압력이 전방위로 확산되는 것 같다. 한미투자협정(BIT)과 관련해 방한중인 웬디 커틀러 미국무역대표부(USTR) 동북아담당 대표보는 한국 정부에 대해 기술 표준 지정시 특정기술을 강요하지 않고 중립적 역할만 하는 기술 중립적 표준 설정과 IT 발전에 걸맞는 지적재산권(IPR) 보호체제 구축 및 규제절차에 대한 투명성을 요구할 예정이라고 한다. 특히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게 될 USTR와의 통신전문가 회의에서 정보통신 기술 표준이 주요 안건으로 다뤄지게 될 것이라고 한다.

 한국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동맹국이자 동반자인 미국의 압력이 시장개방에서 위피(WIPI), 휴대인터넷, LBS(위치기반서비스) 등의 표준화로 범위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위피가 국산 무선인터넷 플랫폼 표준이고, 휴대인터넷과 위치기반서비스는 국내 표준화 절차를 진행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물론 통신표준 문제가 거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에도 위피 등이 통상현안으로 부각된 적이 있다. 하지만 모든 안건이 표준에 집중되고 표준화 절차가 도마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가 작금의 사태를 우려하면서 향후 추이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국내표준을 걸고 넘어지는 이번 사태를 효과적으로 막지 못할 경우 안방을 내줘야하는 것은 물론 세계시장에 도전하려는 꿈도 접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시장개방에 초점을 맞췄던 미국의 압력이 전방위로 확대된 것은 기술표준을 주도하지 않고서는 한국시장을 잡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미국 기업이 겨냥하고 있는 IT시장의 경우 기술표준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미국이 국내 표준제정 절차에 압력을 넣고, 감시의 시선을 집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휴대인터넷이나 LBS 등 첨단서비스의 상용화 시연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한국시장에서 제2의 위피가 탄생하는 것을 사전에 막겠다는 것이다.

 글로벌 표준을 따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심화되는 미국과 통상마찰을 막기 위해서는 전산원, 정보보호진흥원(KISA), 전자통신연구원(ETRI) 등 정부산하기관 관계자들이 사실상 주도하는 표준화 절차부터 개선돼야 할 것 같다. 특히 정통부 또는 산하 기관의 관계자가 맡고 있는 표준 초안 작성지침을 시달하는 기술위원회 의장직을 교수나 민간사업자로 교체하는 등 관 주도에서 벗어나 교수나 민간기업 전문가들이 국내표준과 국제표준을 제정토록 하는 선진환경으로 변모해야 한다.

 물론 삼성, KT 등 몇몇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업체들이 표준화 절차에 참여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고, 민간중심의 표준화를 표방하는 포럼의 활동이 미약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기술인력들이 주로 담당해야 하는 표준관련 업무에 대한 인식이 낮고, 국제 표준화 과정에서 국내업체끼리 협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표준 제정을 민간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실보다는 득이 많기 때문이다. 미국의 압력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머뭇거리다 안방을 송두리째 내주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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