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이 국산 소프트웨어 조달단가를 지키지 않는 문제점을 지적한 기사(본지 22일자 1면)에 대해 많은 전화와 메일이 왔다. 대부분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제대로 지적했다는 소프트웨어 업체의 격려였지만 일부 공공기관에서는 불만에 가까운 해명을 했다. 그 해명의 골자는 한 마디로 ‘우리 책임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일부 기관은 조달청이 업체와 맺은 계약대로 대금을 지급했을 뿐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또 다른 기관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소프트웨어 업체 간에 벌인 자연스러운 가격 경쟁의 잘못을 공공기관에 전가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표면적으로 일리가 있다. 소프트웨어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분위기 속에 가뜩이나 적은 예산에서 소프트웨어를 제값주고 산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으로 보일 지도 모른다. 조달단가 제도 역시 이를 지키지 않는 공공기관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고 오히려 조달단가 이하로 공급된 금액을 업체에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모순을 지니고 있다. 일부 국산 소프트웨어 업체는 공공기관에 제품을 공급했다는 선전 문구를 얻기 위해 출혈경쟁도 마다않는 근시안적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과연 이러한 상황 논리가 무너진 소프트웨어 조달단가를 초래한 공공기관의 면죄부가 될 수 있을까. 문제는 역학관계다. 구매자인 공공기관은 이른바 ‘갑’이다. 반면 국산 소프트웨어 업체는 당연히 ‘을’이다. 더욱이 일반기업과 달리 공공기관은 업체 입장에서 더욱 대하기 어려운 ‘갑’이다. 이 관계에서 ‘을’이 ‘갑’의 눈 밖에 나는 행동을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정도를 지키면 된다. 고질병인 ‘최저가 입찰제도’를 지양하고 조달제도에 대한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 주먹구구식으로 마련되는 소프트웨어 수요 예보를 제대로 짜서 적절한 구매 예산 마련의 기반을 닦는 작업도 필요하다.
이 작업은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지만 공공기관 스스로 마련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갑’의 의무다. 그것이 국산 소프트웨어를 살려야 한다고 외친 공공기관의 선언을 실천으로 발전시키는 첫 걸음이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kr>
오피니언 많이 본 뉴스
-
1
[ET단상] 다양한 OS환경 고려한 제로 트러스트가 필요한 이유
-
2
[보안칼럼]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개인정보 보호와 관리 방안
-
3
[ET시론]2050 탄소중립: 탄녹위 2기의 도전과 과제
-
4
[ET시론]양자혁명, 우리가 대비해야 할 미래 기술
-
5
[김종면의 K브랜드 집중탐구] 〈32〉락앤락, 생활의 혁신을 선물한 세계 최초의 발명품
-
6
[황보현우의 AI시대] 〈27〉똑똑한 비서와 에이전틱 AI
-
7
[최은수의 AI와 뉴비즈] 〈16〉산업경계 허무는 빅테크···'AI 신약' 패권 노린다
-
8
[데스크라인] 변하지 않으면 잡아먹힌다
-
9
[ET톡] 지역 중소기업
-
10
[여호영의 시대정신] 〈31〉자영업자는 왜 살아남기 힘든가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