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매일 쓰는 마우스 바닥의 빨간색 광(optical) 포인터를 개발하고 전세계 광마우스 핵심 부품 96%의 시장점유율을 가진 회사가 애질런트테크놀로지스라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핵심 소자를 창안하고 개발한 주역이 애질런트테크놀로지스 연구소의 생화학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실리콘밸리 중심부 팰러앨토 시내를 지나 한적한 구릉이 펼쳐지는 곳. 말들이 한가롭게 뛰노는 푸른 언덕에 통신과 계측기, 전자, 생명과학 기술 기업의 심장부인 애질런트테크놀로지스의 중앙연구소가 위치해 있다. 연구소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벽에 걸려진 몇 개의 액자. 전기적인 힘에 의해서 단백질을 크기별로 분류하는 실험의 결과물을 화려한 색으로 재구성한 것이었다. ‘과학적 발견과 예술의 만남’을 통해 이 연구소가 궁극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기본 연구의 방향을 한마디로 표현하고 있었다.
◇아이디어 테스트에 주저하지 마라=애질런트 라이프사이언스연구팀 칼 마이어홀츠 박사는 “각자 분야에서 연구를 하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으면 누구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며 “이런 모습은 아주 자연스러운 연구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애질런트의 이런 자유롭고 긍정적인 토의문화는 다양한 시도를 가능하게 한다. 광을 이용한 마우스 내비게이션 기술도 마우스의 트랙볼에 먼지가 끼여 사용에 불편을 느끼던 한 생화학자의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던 것이 좋은 예다.
애질런트 연구원들은 자신들이 생각한 아이디어를 직접 상품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다. 갑자기 생각난 조그만 아이디어를 사장하지 않고 연구소에서 테스트할 수 있는 환경을 열어 둔 것이다. 연구원들은 통신과 전자, 생명과학 등 각자의 분야 연구를 하다가도 도움이 필요한 분야의 연구원들에게 기술 자문을 받을 수 있다. 연구소 내에 IT·BT·NT 관련 기술력을 모두 갖춘 애질런트는 이런 리소스를 200% 활용해 자연스럽게 상호 간 인터랙션을 만들고 상품화에 이르는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구축했다.
마이어홀츠 박사는 “특별히 연구원들에게 이런 분위기를 독려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연구하다 필요한 기술을 서로에게 도움받는 것입니다.” 특별히 융합기술이란 분야를 두지 않아도 애질런트 내에서 연구는 융합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음을 방증하는 말이었다.
◇30%의 화이트 필드=‘화이트 필드 연구(white field research)’란 특정한 연구 주제나 개발 아이템을 지정하지 않고 각분야의 연구자들이 공동으로 연구하는 체제를 말한다. 애질런트는 자유분방하고 창의적인 연구 분위기를 극대화하기 위해 모험적인 시도인 화이트 필드 연구를 하고 있다. 250명의 석·박사 인력이 연구하고 있는 애질런트테크놀로지스스 중앙연구소에서는 매년 30%의 연구원들에게 화이트 필드 연구를 지시한다.
연구자들은 회사에서 특별하게 개발을 지시받은 사항이 없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연구원들과 토의를 통해 첨단 제품을 개발하고 시장을 선도한다.
애질런트테크놀로지스스의 이런 시도는 성과 면에서도 괄목할 만하다. 2002년에 이 회사 매출의 약 70%가 이 화이트 필드 연구 성과물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2002년 애질런트는 총매출 60억달러를 기록했다. 이 중 42억달러 정도의 제품이 제한 없는 융합 연구인 화이트 필드를 통해 달성됐다.
매출뿐만 아니라 애질런트의 화이트 필드 연구는 다양한 신기술의 제한 없는 확보를 가능케 했다. 특히 이런 연구는 다른 기업과 공동 개발 및 공동 마케팅에서도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애질런트는 이를 통해 글락소스미스클라인과 같은 제약회사에 신약 개발용 크로마토그라피 장비를 공급하고 필립스에 시스템온칩(SoC) 관련 장비를 제공하는 등 IT제품에서 BT제품까지 다양성을 확보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다양성은 시스템&솔루션랩(system&solution Lab), 정밀계측기 랩(precision instrumentation Lab) 등의 탄탄한 기초위에서 가능하다.
케빈 킬른 폴리머&구조물질 그룹 프로젝트 매니저는 “중앙에서 혁신적인 연구의 기틀을 마련해 주는 것이 결국 회사의 미래를 여는 제품 개발로 이어진다”며 “화이트 필드 연구를 시작하는 연구자들은 자유로운 연구 속에 막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세계 유수 거대기업들의 연구소가 즐비한 실리콘밸리에서 애질런트테크놀로지스스 연구소는 광통신 기기와 부품, 계측장비, 마이크로어레이칩 등 IT에서 바이오기술, 나노기술 및 이들의 융합 신기술을 총망라하는 첨단 연구의 산실임이 분명했다.
세계적인 계측기 전문기업으로 알려진 애질런트테크놀로지스스 중앙연구소의 입구에 걸려있는 단백질 분리 주제의 그림이 보여주는 연구의 지향점. 생화학자가 광마우스 핵심부품을 개발할 수 있는 환경. 연구원들에게 ‘목표의 진공상태’를 제공해 융합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자유분방한 연구소의 분위기. 회사 총매출의 19.6%인 12억달러의 높은 연구비 투자. 이런 요소들이 애질런트테크놀로지스스의 미래를 밝히고 있었다.
◆[인터뷰]케빌 킬른 박사
“정보기술(IT)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눈을 돌린 곳이 바로 IT를 바탕으로 하는 바이오 산업입니다.”
애질런트테크놀로지스 중앙연구소에서 폴리머&구조물질 그룹을 지휘하고 있는 케빈 킬른 박사는 세계적인 기업들이 새로운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애질런트는 IT·BT·NT분야의 유능한 인력과 막강한 연구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융합기술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기술이 융합된 제품을 만들고 새로운 시장에 발빠르게 대처하고 있는 것입니다.”
애질런트가 타깃으로 정한 분야는 제약기업들이 빠른 시간 안에 신약을 스크리닝할 수 있는 간편한 시스템 개발이다. 또 이런 시스템을 통해 생산되는 엄청난 데이터를 가공해 이들의 상호 연동 작용을 파악하는 영역으로 확대하고 있다.
그는 “새로운 바이오 기술의 트렌드는 개인화된 약(personalize medicine)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며 “개인의 특성에 맞는 약을 개발하기 위해선 유체를 조작하는 기술인 마이크로플루이딕스와 멤스, 인포매틱스간 접목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애질런트는 이런 전략에 따라 수 ㎖의 적은 양의 시료 움직임을 이용한 마이크로플루이딕스 기술을 신약개발에 활용하고 있다. 애질런트는 △분석시스템과 △컴퓨테이셜생물학 △정보관리 분야에 연구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
“신약개발 연구를 빠르게 하는 분석시스템 분야는 바이오와 기계공학, 물리학, 광학 기술을 모두 집대성하는 연구입니다. 이 연구를 통해 애질런트는 마이크로플루이딕스 채널을 이용한 랩온어칩(lab on a chip)을 개발, 단 몇분안에 수천 개의 유전자의 발현을 볼 수 있게 했습니다.”
그는 또 최근에 애질런트는 특히 핵산과 단백질, 탄수화물 등 모든 바이오 마이크로 분자를 측정하고 특징을 볼 수 있는 시스템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랩온어칩에서 얻어진 수많은 유전정보를 어떻게 관리할지 모르는 것도 바이오기업들의 최대 고민거리입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 만개의 유전자 정보를 분석해 서로 연관성을 밝혀내고 이를 진단과 치료에 사용하게 할 것입니다.”
킬른 박사는 랩온어칩을 통해 각각 환자의 유전정보를 얻고 이를 바탕으로 대사 진행과정 전반에 이르는 방대한 데이터를 집대성해 개인화된 약을 만드는 모든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애질런트의 핵심 역량이라고 설명했다.
<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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