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 및 재료 세계시장에서 국내업체와 외국업체는 한마디로 ‘다윗과 골리앗’에 비유된다. 기술·자본·마케팅 등 어느 것 하나 비교우위를 갖추지 못한 우리로서는 외국 유수업체와의 해외시장 경쟁에서 백전백패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는 비단 세계무대뿐 아니다.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 등 메모리·LCD분야 세계 1위 업체가 우군으로 버티고 있는 국내에서조차 외국업체에 ‘안방’을 내주기는 마찬가지다. 김광선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세계 1위 반도체장비업체인 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AMAT)의 연간 R&D 투자금액이 우리나라 반도체장비업체 전체의 연간 매출보다 많다”며 “일단 규모의 경쟁력에서 게임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매출만 따져봐도 지난해 AMAT는 6조5000억여원(50억달러)을 벌어들인 데 반해 국내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린 케이씨텍은 560억원에 그쳤다. 무려 116배나 차이가 난다. 반도체 재료 중 가장 비중이 큰 실리콘웨이퍼 부문에서도 1위 업체 일본 신에쓰와 국내 LG실트론의 매출차이도 7배에 이른다.
문제는 이같은 격차가 갈수록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차세대 장비와 소재 연구개발비는 10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게 예사다. 많아야 매출 500억원을 겨우 넘는 국내 업체로서는 신제품 개발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고, 결국 미래시장에서도 마이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이 때문에 국내 업체간 ‘발전적 인수합병(M&A)’을 끊임없이 주문하고 있다.
해외 유수기업에 비해 허약한 체질을 개선하는 것은 물론 국내업체간의 과열경쟁을 막는데도 M&A만큼 좋은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세계 정상권에 도달해 있는 AMAT나 KLA-텐코, 노벨러스시스템스와 같은 장비업체도 90년대 초반부터 끊임없는 M&A를 통해 지금의 ‘몸집’을 키웠을 정도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무조건 오너십을 고수하려는 CEO들의 낡은 마인드와 M&A하기 어려운 기업풍토 등으로 모범사례가 한 건도 나오지 않고 있다.
최명배 디아이 사장은 “경기악화로 몇몇 기업이 부도지경에 내몰리면서 M&A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면서도 “한국사람들은 일단 사장 자리를 지키고 보자는 근성이 강한 데다 상대를 믿지 못해 초기단계에서 M&A가 무산되기 일쑤”라고 꼬집어 말했다.
고석태 케이씨텍 사장은 “M&A를 제도적으로 돕는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엔 M&A에 대한 법체계가 워낙 복잡한 것도 문제”라며 “최근 M&A를 심도있게 논의하던 업체들도 복잡한 절차와 과중한 세금문제로 중도 포기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나노기술연구조합 나노전자분과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문상영 아토 사장은 “굳이 M&A가 아니더라도 R&D나 해외영업에서 연대를 강화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며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는 길이 보이는데 못하니 답답할 노릇”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해외 유력업체와 연대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나노종합팹구축사업단 김대희 본부장은 “한국디엔에스나 세크론(옛 한국도와)의 경우 일본 업체와 제휴를 통해 기술력을 높인 좋은 케이스”라며 “글로벌 기업과 연대하면 앞선 기술이나 마케팅 기법을 단기간에 전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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