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강진을 찾아

목포를 거쳐 강진으로 들어가는 길. 읍내에 닿기 전 월출산 자락에 터를 닦은 무위사를 먼저 들른다. 원효대사가 신라시대에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기록은 없다. 본전인 극락전은 후불벽화가 인상적이다. 본존불 후불 벽화뿐만 아니라 내부 벽면에 그린 여러 개의 벽화가 발견되었는데 지금은 보존각 안에 따로 전시하고 있다. 희미해져 가는 선과 색채 사이에 기품과 경건함이 느껴지는 벽화들이다.

 무위사의 여름은 푸르른 느티나무 덕분에 시원해 보인다. 키 큰 느티나무 두 그루가 경내에 너른 그늘을 던진다.

 무위사와 함께 강진을 대표하는 사찰은 백련사다. 빽빽한 동백숲 때문에 봄철이면 몸살을 앓기도 하는 이 절은 신라 말에 창건되었다는 고찰. 절 마당에 서면 시야가 탁 트여 강진만 구강포가 한 눈에 들어온다.

 동백숲으로 난 길을 따라 산을 넘어가면 정약용의 유배지 다산초당에 이른다. 한시간여 걸리는 이 길은 호젓한 산책을 즐기기에 적당한데, 다산선생은 백련사 해장선사를 찾아 자주 이 길을 오가곤 했다.

 백련사에서 다산초당까지는 자동차로 5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거리다. 입구에 다산유물관이 있어서 선생의 생애와 작품집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찾는다면 유물관을 먼저 둘러본 다음 초당으로 오르는 게 좋겠다.

 유물관에서 초당까지는 1㎞ 조금 못되는 거리. 귤동마을을 지나면서부터는 빽빽한 나무 사이 놓인 숲길을 걸어 오르게 된다. 소나무, 전나무가 우거지고 야생 차나무가 자라는 숲을 지나면 초당에 이른다. 숲이 우거져 대낮에도 어둑한 초당은 청렴한 선비가 조용히 책을 읽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공간으로 보인다. 선생은 이곳에서 젊은 선비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저술활동을 하기도 했다. 다산선생이 묵던 동암과 제자들이 머물던 서암, 전망대, 선생이 직접 새긴 정석바위, 차를 끓이는 데 쓰던 약천 등 선생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동암에서 조금 걸어가면 천일각이 있는데 정자는 현대에 이르러 세운 것이고 원래는 선생이 울적할 때마다 올라 구강포를 내려다보며 기분을 달래던 곳이다.

 강진만 구강포는 물이 들고나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물이 빠지면 구강포 한가운데 놓인 죽도까지 걸어서도 갈 수 있겠다 싶을 정도. 요즘에는 오후 2∼3시를 기준으로 두세 시간 가까이 드넓은 갯벌이 드러난다. 물이 들어오면 고깃배들도 따라 들어온다.

 강진읍내에서 동남쪽으로 난 해안도로를 따라 마량까지는 해안선과 나란히 달리는 해안 드라이브의 멋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는 구간이다. 구불구불한 해안도로가 차의 속도를 적당히 조절해주고, 중간에 놓인 전망대나 고려청자 유적지 등 볼거리에서는 차를 멈추고 쉬어가기도 좋다.

 강진은 고려시대 가장 큰 도요지였다. 지금도 옛 방식 그대로 청자를 굽는 요장들이 대구면과 칠량면에 널려 있다. 대구면에 있는 강진청자자료박물관에서는 고려청자의 역사와 주요작품, 청자 만드는 과정 등을 한자리에서 알 수 있다. 그윽한 기품이 느껴지는 청자 빛은 보는 이를 편안하게 한다. 자료관내 판매점을 비롯해 일대에 청자를 판매하는 곳들이 즐비하다. 장식용 청자는 물론 다기, 생활도자기 등을 구입할 수 있다.

 강진 여행의 마지막은 영랑생가로 잡아보면 어떨까. 강진이 낳은 한국의 대표적인 서정시인 영랑 김윤식의 생가가 잘 보존되어 있다. 시인은 1902년 이곳에서 태어나 서울로 이주하던 1948년까지 살았는데 서울과 도쿄 유학시절을 제외하고는 늘 집에서 지냈다. 선생이 남긴 80여편 가운데 60여편을 이 집에서 집필했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빼어난 시어로 활용한 그의 시들은 생가의 구석구석에 있는 소재들에서 탄생했다. 마당에 활짝 핀 모란을 보며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썼으며, 집을 둘러싼 돌담에서는 ‘내마음 고요히 고흔봄 길우에’, 감나무와 장독대에서는 ‘누이야 내 마음을 보아라’, 안채 뒤 동백나무는 데뷔작인 ‘동백닙에 빛나는 마음’ 등을 탄생케 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영랑은 시뿐만 아니라 음악에도 재능을 보였는데 노래, 북, 서양악기까지 능수능란하게 다루었다 한다. 그의 시에서 리드미컬한 음율이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생가 아래쪽에 있는 향토문화관에서는 영랑의 시를 멋들어진 붓글씨나 조각으로 감상할 수 있다. 강진이 낳은 화가, 시인들의 작품도 함께 전시하고 있다.

글·사진 김숙현(여행작가, pararang@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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