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앞으로 뭘로 먹고 살겁니까?”
2년 전 중국에 들렀을 때 현지 기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의 앞날을 궁금해했다. 맹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이 가전과 통신에서 급성장하고 있었지만 한국은 여전히 그들에겐 넘기 힘든 벽이었다. 당시 중국은 WTO 가입을 앞두고 있었다. 시장이 개방되면 자국의 휴대폰산업이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감돌았다. 중국인들의 우려대로 지난 2년 동안 중국은 한국 휴대폰산업의 보고로 부상했다. 그러나 중국 휴대폰산업은 휘청거리기는커녕 반대로 더욱 강해졌다. 불과 2년만에 한국업체들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다. 이같은 현상은 비단 휴대폰에서만이 아니다. 모든 제조업에서 이미 일어났거나 진행중이거나 발생할 일이다. 중국인들의 예견대로 한국은 앞으로 무엇으로 먹고 살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외국인 투자유치는 이제 대한민국의 지상과제다. 이제 우리만의 자본과 기술로 뿌리치기엔 중국이 너무 커버렸다. 거대한 시장과 노동력에다 외국자본을 동원해 급성장하고 있는 이웃 중국에 대응할 수 있는 길은 이뿐이다.
이미 2년 전 중국은 WTO 가입에 대비해 투자유치전략에 일대 메스를 가했다. 노동과 자본의 결합에서 자본과 기술의 융합으로 대전환을 시도했다. 중국 휴대폰산업의 급성장도 자본과 기술을 연계시킨 전략 덕분이다. 중국의 기술발전속도는 무섭다. 한국이 회심의 카드로 여겨온 기술은 갈수록 무뎌지고 있다.
참여정부는 그 어느 정권보다 투자유치에 적극적이다. 한국을 동북아 중심지로, R&D 허브로 만들겠다는 포부다. 그러나 이같은 목표는 아직 우리들만의 꿈일 뿐이다. 한국을 동북아의 중심지, R&D 허브의 적지로 생각해주는 외국인은 아직 없다. 더욱 냉정하게 표현한다면 투자매력이 없는 곳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시장이 좁다. 이들에게 한국은 노동의 유연성도 경제의 투명성도 부족한 곳에 불과하다. 정부의 규제도 심하다. 법인세도 너무 높다.
이제 한국도 투자유치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그러나 중국과는 다르다. 중국은 꿀을 찾듯 몰려드는 자본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관건이다. 하지만 한국은 외국인들이 매력을 느끼도록 그 무엇을 만들고 찾아내야 한다.
한국은 정보기술(IT)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의 테스트베드임을 자타가 공인한다. 한국시장에서 인정받은 제품은 그만큼 세계시장에서 성공을 거둘 확률이 높다. 가전의 명가 소니, 디카의 지존 올림푸스, e비즈니스의 거장 IBM과 HP, 반도체의 달인 인텔과 TI, 그밖에 수많은 통신업체들이 한국시장에 눈과 귀를 모으고 있다. 세계를 선도하는 제품을 검증받고 싶어서다.
한국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땅이 좁아 인프라 투자가 적게 든다. 시장은 좁지만 소비성향도 강하고 얼리어댑터(신제품이면 무조건 구입하는 소비자)도 많다. 테스트베드를 구축할 기술도 충분하다. 한국을 더욱 더 매력적인 IT의 테스트베드로 가꾸고 또 누구나 맘껏 활동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제공해야 한다.
자칫 안방 주인이 손님들로 바뀔지 모른다는 걱정도 있을 수 있다. 물론이다. 그러나 한국 IT기업들의 경쟁력을 믿어야 한다. 과거 일본은 전자제품에 관한 한 세계적인 테스트베드였다. 일본 전자업체들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데는 얼리어댑터와 아키하바라가 톡톡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일본은 안방을 열기보다 닫으려 했기에 세계적인 흐름에서 소외되고 뒤처져버렸다.
안타깝게도 참여정부도 과거 정부와 마찬가지로 투자유치의 중심을 여전히 제조업에 두고 있다. 달라진 점은 기술유치에까지 욕심을 내고 있다는 점뿐이다. 하지만 정작 외국인들이 매력을 느끼는 테스트베드에 기반을 둔 투자유치에는 소홀하다. 제조에 비해 투자규모가 미미하고 시장개방이라는 비판을 의식한 때문일게다.
그렇다고 제조나 R&D 유치를 게을리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투자유치의 대상을 스스로 제조나 R&D로 한정시킬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굳이 손짓을 하지 않더라도 자진해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판매나 유통, 마케팅 분야의 대형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제조업이나 R&D에 못지않은 혜택을 이들에게도 제공해야 한다. 마케팅 투자의 대형화를 통해 제조와 기술의 유치까지 이끌어내는 전략도 필요하다. 제조와 기술은 항상 시장과 가까이에 있기를 원한다.
<유성호부장 shyu@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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