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정보문화를 만들자](15)대구 팔공정보문화센터를 찾아

 지난 17일 오후 2시.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2동 400의 1 팔공정보문화센터에는 노소동락(老少同樂)의 컴퓨터 세상이 활짝 펼쳐졌다. 일흔살이 넘은 할아버지와 열몇살 남짓의 어린이들이 한데 어울려 컴퓨터에 흠뻑 빠져있었다. 60년 가까운 세월의 벽을 허물고 그들은 컴퓨터로, 인터넷으로 하나가 되었다.

 지난해 3월부터 팔공정보문화센터에 나오기 시작한 이대희씨(63·대구시 동구 효목동)는 전국단위 노인정보검색대회에 3번씩이나 출전한 경험을 가진 베테랑급 컴꾼(컴퓨터를 잘 다루는 사람이란 뜻의 대구지방 은어)이다.

 하지만 이씨가 팔공정보문화센터에 처음 발을 들여놓을 때는 컴퓨터를 켜고, 끄는 것조차 쭈뼛거릴 정도로 컴맹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독한 컴맹이었던 그가 지금처럼 워드에서부터 엑셀, 파워포인트, 포토숍을 넘어 인터넷 검색까지 소위 달인이 된 것은 순전히 팔공정보문화센터가 진행하는 ‘경로반컴퓨터교육’ 덕분이었다.

 이씨는 “만약 그때 컴퓨터교육을 접하지 못했더라면 인생의 커다란 ‘낙(樂)’ 하나를 그냥 모른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을 것”이라며 “지금의 변화된 생활을 생각하면 참 고맙고 감사한 일”이라며 딱히 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칭찬을 돌렸다.

 이씨처럼 팔공정보문화센터가 제공하는 경로반컴퓨터교육을 거쳐간 사람은 지난 2000년 12월 설립 이후 줄잡아 600여명에 이른다. 지난주(9일) 31기 강좌가 시작돼 현재 진행중이다.

 이렇게 배출된 할아버지·할머니 컴꾼들 21명은 따로 정례적인 모임을 갖고 컴퓨터 교육 이후에도 각종 정보와 우의를 나눈다. 이 중에는 각 지방에서 열리는 정보검색대회 일정에 맞춰 예상문제도 함께 풀고 동반 출전하는 등 컴퓨터강좌 수강생 시절보다 더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이들도 여럿 있다.

 이들은 행정자치부 정보화마을중앙협의회가 운영하는 정보화마을 사이트(http://www.invil.org)에 독자적인 방(http://club.invil.org/silver80)을 개설, 서로 정보도 공유하고 컴퓨터 활용상의 어려움을 서로 협력해 해결하기도 한다.

 센터의 3개 강의실 중 1개 강의실에서 경로반 교육이 한참 진행중이던 오후 3시께가 되자, 팔공정보문화센터는 여느 초등학교 교실처럼 갑자기 왁자지껄해졌다. 근처 효신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하교길에 센터에 들러 주민들을 위해 개방된 컴퓨터교실을 ‘점령’해버린 것이다.

 어린이들 틈에서 만난 이승준(효목동·효신초 6)군의 점령사(詞)가 자못 진지하다. “집에 가도 컴퓨터는 있지만, 컴퓨터와 친구가 함께 있는 곳은 이곳뿐”이라며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 있냐”고 되묻는다. 중간 중간 인라인 스케이트를 탄 어린이들까지 가세해,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센터가 문을 닫는 오후 6시까지 계속됐다.

 31기 교육생으로 7일째 컴퓨터를 배우고 있는 류태한씨(68·동구 방촌동)는 이날 배운 ‘디스켓에 파일 저장하기’와 ‘불러오기’를 까먹지 않기 위해 깨알같은 글씨로 공책 필기까지 해놓은 열성파 할머니다. ‘손자·손녀들에게 메일이라도 보내기 위해서’라는 배움의 목적 너머에는 ‘인생의 마지막 배움’이라는 의욕이 강하게 배어 있었다.

 그는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집에 있는 컴퓨터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며 “무언가를 배우고 알아간다는 것이 이렇게 즐겁고 기쁜 일인가를 새삼스럽게 느낀다”고 말했다. 류 할머니는 “컴퓨터를 통해 남은 여생이 어떻게 바뀔지 야릇한 기대감마저 든다”고 덧붙였다.

 팔공정보문화센터는 지역주민들에게 컴퓨터 활용이 어떻게 확산되어야 하고, 정부 및 공공기관의 정보화 지원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전형적인 모범이다.

 매달 20명씩을 선발하는 60세 이상 경로컴퓨터교육 신청은 전달 25일 오전 9시부터 시작해 선착순 마감하지만 1시간도 안돼 정원이 마감되는 ‘사태’가 벌써 여러차례 빚어졌다. 지역주민들이 컴퓨터교육에 대해 얼마만큼의 호응도를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대구광역시 동구청에서 맡고 있는 각종 교육과 센터 운영 프로그램에 대한 홍보가 지역주민들에게 빠르고 정확하게 이뤄지는 것도 센터의 대중적 인기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센터의 주민밀착성은 이곳을 찾은 아이들에게서 더욱 확연히 느껴졌다. 개구쟁이들이라 컴퓨터교육을 일부 방해하는 측면도 분명히 있지만 이들은 PC방이자 공부방이 돼버린 센터의 각종 시설을 맘껏 누렸다.

 더구나 할아버지·할머니들과 함께 어울려 컴퓨터를 활용함으로써 언제부터인가는 자율적인 예절이 바로 잡혀 센터내에서의 소란이 도를 넘어서는 경우는 극히 드물게 바뀌었다.

 일체의 권위나 규제 없이 컴퓨터와 가까워지고 그것을 장벽 없이 즐기도록 하는 것이 나라의 장래를 맡을 아이들에게 정보화가 줄 수 있는 가장 최고 형태의 혜택이란 사실이 팔공정보문화센터에서 너무나 선명하게 확인됐다.

 

◆할아버지 명강사 김기하씨

 ‘눈높이 교육.’

 팔공정보문화센터의 경로반컴퓨터교실은 전임강사인 김기하씨(74)를 빼놓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 역시 호호 늙은(?) 할아버지지만 다른 할아버지·할머니를 컴퓨터 세상으로 인도하는 전도사이기 때문이다.

 할아버지·할머니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컴퓨터 실기와 이론을 같은 입장에서 설명할 수 있어서 그 자체가 ‘눈높이 교육’인 셈이다.

 김기하 강사의 ‘명강의’는 사실 오랜 교직생활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지난 95년 40년간의 교편생활을 마치고 분필을 놓은 대신 마우스를 잡았다.

 수필가로서 대구지역 문단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문학공부와 함께 컴퓨터공부를 시작한 것이 65세였으니 만학도 그런 만학이 없었다”고 처음 컴퓨터를 배우던 시절을 회상했다.

 지금은 어떤 컴퓨터 전문가보다도 뛰어난 언변과 논리로 컴퓨터를 가르치는 김씨의 숨은 실력은 대학교 컴퓨터 전공 강의의 수강을 통해 쌓였다.

 “경북대 전산학과 3학년 수업을 함께 들었습니다. 젊은 학생들의 실력을 따라갈 수는 없었지만 배우고자 하는 열정만큼은 그들에게 뒤질 수 없었습니다.”

 김씨는 자신보다 젊은(?) 할아버지·할머니 학생들을 대상으로 효과만점의 컴퓨터 강의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을 교수법에서 찾았다.

 “컴퓨터교육 이론서는 지금도 충분할 정도로 넘쳐납니다. 하지만 노인들이 이해하기 쉽고 꼭 필요한 실기와 이론을 담은 책은 전무합니다. 그래서 저의 강의노트는 그 어떤 교육서보다도 할아버지·할머니들의 시각에 충실합니다. 다른 전문학원에 다녔던 수강생들이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을 센터 강의를 듣고 이해하는 것을 보면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납니다.”

 강의활동이 3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뜻하지 않은 기억도 많이 남았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경북대에서 수필강의를 수강하던 시절 은사였던 사람이 거꾸로 자신의 컴퓨터교육을 수강했던 것이다. 서로가 상대방에게 한번씩 가르침을 준 것이다.

 “정보통신부 정보화강사지원단에 등록돼 공인 컴퓨터 강사로 활동중입니다. 어느날 이곳 팔공정보문화센터에서의 소임이 다 한다면 다시 나를 필요로하는 곳에서 황혼의 이웃들에게 컴퓨터를 알려주고 싶습니다.”

 

 <대구=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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