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간판 상품을 묻는다면 누구나 대답한다. 반도체와 휴대폰. 정답이다. 그러나 한 발 더 나아간 질문을 던지면 대답이 만만치 않다. 삼성전자의 ‘숨어 있는’ 대박 상품은. 일반인들로선 해답이 마땅치 않겠지만 가전분야에 관심있다면 그리 어려운 문제도 아니다. 바로 콤보다.
DVD 콤보는 VCR와 DVD플레이어를 결합한 대표적인 복합제품이다. 지금이야 두 기기의 결합이 일반적이지만 처음 시장에 등장한 지난 2000년 말만 해도 획기적인 일이었다. VCR 시장은 저물어가고 DVD플레이어 시장은 아직 활성화되지 못했던 매우 어정쩡한 시점이었다.
당시 VCR는 더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기술에 가격도 하락 일변도를 걷는 골칫덩이였다. 세계적인 전자업체들은 VCR 생산을 중단하고 서둘러 아웃소싱 체제로 전환했다. 남는 것 없는 장사는 예나 지금이나 구조조정 1순위다. 사업부 직원들도 위축돼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삼성전자 비디오사업부의 회의석상에서 VCR와 DVD를 한꺼번에 붙인 제품을 만들어 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아이디어였지만 이를 상품화하기란 쉽지 않았다. 대표적인 아날로그 상품인 VCR와 디지털 제품 DVD플레이어를 결합시키는 일은 기술적으로도 간단치 않은 작업이었다. 이를 해결했다 해도 첩첩산중이었다. 가장 우려했던 것은 ‘복합상품은 고장이 쉽고 문제발생시 고치기도 어렵다’는 소비자들의 선입견을 뚫고 어떻게 시장에 접근하느냐였다. 과거 TV와 VCR 복합상품이 소비자들의 외면으로 내수시장서 참패를 당한 아픈 기억을 사람들은 잊지 않고 있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우선 주변에서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당시 비디오사업부장을 맡고 있던 신만용 전무가 주변의 걱정을 일축하고 사업화를 밀어붙였다. 망설이던 사람들을 설득해 미국시장 진출도 밀고 나갔다. 결과는 대성공. 본격 출시 첫해에 100만대 수출 성과를 올리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지금은 LG전자를 비롯해 소니·파나소닉 등 세계적 가전 거인들도 콤보 제품을 잇따라 내놓을 정도가 됐다.
무모한 도전이라며 불안한 시선을 보냈던 사람들도 비디오사업부 직원들이 몇 년째 삼성전자 전 사업부 중 연말 인센티브를 가장 많이 받는 것을 보면서 부러움의 눈길로 바뀌었다. 대박 산파역 신만용 전무도 부사장으로 승진했고 최근에는 삼성전자의 전략사업인 디지털TV와 모니터를 책임지는 영상디스플레이 사업부장으로 옮겨갔다.
천덕꾸러기 DVD 콤보가 백조로 변신한 것은 아이디어와 기술, 그리고 추진력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콤보가 두고두고 회자되는 이유는 대박상품이라는 타이틀 외에도 사양산업도 각광받는 사업으로 비상할 수 있다는 실증적 사례이기 때문이다. 아이디어와 도전의식이 있는 한 ‘제조업은 영원’하다. 콤보가 보여주었다.
<전경원기자 kwju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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