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포럼]전통산업의 정보화

 ◆서지현 버추얼텍 사장·벤처기업협회 부회장 jihyun@virtualtek.co.kr

   

 코스닥시장이 붐을 이루던 2000년 초까지만 해도 ‘코스닥은 벤처’ ‘벤처는 곧 정보기술(IT)산업’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시장 상황이 워낙 좋다 보니 기업을 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IT사업에 뛰어들어 회사 자본을 몇 배, 몇십 배 ‘뻥튀기’해 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 때였다. IT가 도대체 뭔지도 모르는 부류의 사람들조차 IT를 해보겠다고 소란을 피우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쓴웃음이 절로 난다. 코스닥의 거품이 신기루처럼 꺼져 버린 지금, 그분들의 야심은 과연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다.

 얼마 전 만난 의류업체 B 회장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IT산업에는 진출하지 않겠다는 경영관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는 IT산업은 경쟁이 심해 도산하기 쉽지만 굴뚝산업은 10년 전 한국의 기술 수준으로도 우리보다 산업성장이 늦은 해외로 나가면 아직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는 요지의 말도 곁들였다. 백 번 옳은 말이다. 전통산업을 표방하는 회사가 하루 아침에 IT산업으로 뛰어드는 것은 소위 말하는 ‘문어발식’ 경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70, 80년대 눈부신 발전을 이룬 의류·신발류 등의 산업은 당장 큰 연구나 고민없이도 동남아나 중앙아시아·아프리카 대륙 등으로의 판로를 개척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B 회장의 경영관이 100% 맞다고 볼 수도 없다. 앞으로 몇 년이 더 지나면 어떻게 될까. 후진국은 우리를 위해 영원한 후진국으로 남아 있어 줄 생각이 없다. 개발연대에 고도의 압축적인 성장을 한 한국이 그랬듯 지금 우리가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는 후진국의 기술력이나 경제력이 눈부신 성장을 거듭할 것이고 지금은 헐값처럼 여겨지는 그 나라의 인건비도 머지않아 국제평균 수준으로 올라설 것이 분명하다. ‘저비용’의 효과가 단시일에 그칠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 2000년 코스닥 붐이 일 때 많은 사람은 막연히 IT만을 상상했지 IT산업과 건축·제지 등과 같은 전통산업이 융합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우리 기업의 생존전략은 IT와 전통산업의 융합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전통산업과 IT산업은 더이상 전혀 상관없이 진행되는 평행선이 아니다. 어떤 산업에 종사하느냐와 관계없이 우리의 목적은 하나기 때문이다.

 중국을 일컬어 ‘세계 제조업의 굴뚝’ ‘새로운 IT산업의 메카’라고 부른다. 오히려 우리보다 더 제조업과 IT산업의 융합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흔히 중국이 우리나라 경제력을 따라 오려면 몇십 년이 걸리고 우리가 일본만큼 되는 데 몇 년이 걸린다는 식의 신문 기사나 현장 실무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그런 계산들을 믿지 않는다. 확실한 미래는 있을 수 없다는 평소의 믿음 탓이기도 하지만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현대사회에는 변수가 아주 많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전쟁·천재지변 또 국가 수뇌부의 자질 등 여러 변수 중에서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전통산업과 IT화의 접목, 그에 따른 시너지효과에 주목하고 싶다.

 국민의 정부는 범정부 차원에서 ‘전통산업과 IT산업의 융합’ ‘굴뚝산업의 정보화·e비즈니스화’를 추진했다. 이 같은 정책은 세계적인 불황으로 허덕이는 IT업계에는 활력을, 경쟁력이 약화되는 전통 굴뚝산업계에는 효율성을 불어넣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굴뚝산업들에 정보화 마인드를 깊이 심어주는 계기가 된 점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아직 이 나라 전통산업이 세계시장에서 발군의 실력을 자랑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일부 배부른 대기업만의 IT 도입은 가뜩이나 살기 힘겨운 전통산업 중소기업들에 너무 모진 일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산업은 가내수공업 수준에서 시작했고 아직 여전히 규모가 작은 기업이 많이 포진해 있다. 우리나라 경쟁력을 지탱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알짜배기 중소기업들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들의 IT화도 하루 속히 활발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새 정부가 출범했다. 부디 ‘전통산업의 정보화’에 우리 경제의 성패가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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