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사피엔스 이야기](57)로봇, 나그네에게 길을 묻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거지.’

 깊은 밤 가위에 눌리면 꿈인지 생시인지 혼란스런 순간이 온다. 눈을 떠도 얼른 시력이 회복되기 않는 불과 몇 초간의 공백상태지만 위치감각을 상실한 순간의 당혹감은 의외로 크다. 이처럼 스스로 어디에 있는지를 모른다는 것은 원초적인 두려움의 하나다. 고등생물이라면 자신의 위치를 모르는 상태에서 다음 행동을 합리적으로 결정할 수 없으며 위치정보의 부재는 흔히 생명의 위협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로봇이 제 기능을 발휘하는데도 위치확인은 매우 핵심적 요소다. 산업용 로봇은 기계팔의 각도와 이동경로를 100분의 1초 단위로 파악해야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집 안에서 이동하는 퍼스널 로봇에게 자신의 위치정보를 인식시키는 문제는 오랜세월 과학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주변공간을 입체적 시각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로봇에겐 20평짜리 소형아파트 안에서 이동경로를 찾는 일도 마치 돛단배가 폭풍 속을 통과하는 것처럼 어렵다.

 그런데도 보통 사람들은 신생아처럼 방향감각이 미숙한 로봇에게 집 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가정부처럼 빈틈없이 청소를 해주길 기대한다. 상상해보라. 당신은 갑자기 눈을 가린 채 낯선 집에 끌려 들어갔다. 주인은 걸레를 던져주며 한시간 안에 집 전체를 닦으란다. 이 집에 방이 몇개인지 내가 어디쯤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깔끔한 청소라니 도대체 말도 안되는 얘기다.

 수많은 가전회사들이 가정용 로봇개발을 중도에 포기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이들이 쿵쿵 뛰어다니고 온갖 장애물(쇼핑백·의자·장난감 등) 위치가 수시로 바뀌는 가정환경은 로봇기동을 크게 제약한다. 하물며 출입문도 찾지 못해 하루종일 벽과 씨름하는 장님로봇에게 가사일을 시키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현재 로봇에게 위치감각을 부여하는 방법은 바퀴 구동수로 위치를 계산하거나 레이저 감지기, 입체카메라 심지어 크루즈미사일의 지형항법장치까지 다양하지만 아직 명쾌한 결론은 없다. 물론 수백만원짜리 첨단센서를 덕지덕지 붙인다면 안될 것도 없겠지만 가정용 로봇이 그렇게 비싸서야 누가 사겠는가.

 최근 외국산 청소로봇이 들어와 일부 부유층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항법장치라곤 초음파 센서를 이용한 원시적 충돌회피 기능밖에 없어 국내 가전사들의 비웃음을 사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훨씬 저렴하고 신뢰성 있는 실내 항법장치가 달린 청소로봇이 올해 안에 상용화되고 로봇의 기동성도 비약적으로 향상될 것이라 장담한다.

 로봇이 자신의 위치를 안다는 것은 언젠가 철학적인 자아성찰이 가능해진다는 의미도 지닌다. 나는 누구(청소로봇)며 어디서(거실) 와서 어디로(작은 방) 가고 있는가. 한낱 걸레질하는 로봇도 사람흉내를 내다보면 결국 인생사의 고민과 부딪치게 된다.

  bail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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