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자원부 무역위원회 무역조사실장 이계형 lghyung@mocie.go.kr
글로벌 경제시대에 매우 중요하면서도 아직 일반인의 인지도가 낮은 분야가 있다. 바로 무역구제제도다. 외국 기업들은 이를 잘 알고 기업경영에 중요한 요소로 인식하고 있으나 우리 기업들은 제도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령 어떤 중소기업이 기술개발에 전 자원을 투입해 제품개발에 성공했다고 하자. 그 결과 회사의 매출이 급성장하고 있는데 외국의 경쟁업체가 위협을 느껴 그 회사를 시장에서 축출하기 위한 출혈적인 가격정책을 쓴다면 피해를 보는 중소기업은 이를 어디에 호소해야 할까. 모처럼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획득했는데 자기 기술을 누군가 복사해 시장에 출하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부분의 중소기업 사장들은 구제수단을 몰라 당황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에 무역위원회를 찾아 무역구제수단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무역구제제도(Trade Remedy System)는 공정무역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다. 교역상대국으로부터 불공정한 수입으로 인해 피해를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을 경우 당해 수입품에 대해 관세부과·수입수량제한 등의 조치를 취해 국내 기업을 구제하는 제도를 말한다. 무역구제제도에는 구제수단에 따라 덤핑방지관세제도, 상계관세제도, 세이프가드제도, 기타 불공정무역조사제도 등 네 가지 유형이 있다. 이러한 무역구제제도는 건전한 무역질서를 확립시켜 국내 시장이 보다 공정한 경쟁에 의해 작동되도록 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무역구제제도는 또 국내시장에서 전세계의 기업들이 각각의 경쟁력에 맞게 경쟁하도록 하는 제도적 보장장치가 되고 있다. 즉 수출기업이 경쟁력 이외에 덤핑, 부당한 보조금, 지적재산권 침해, 허위 원산지 표시 등 불공정한 수단에 의해 시장확대를 할 경우 이를 철저히 방지함으로써 공정한 경쟁여건을 형성하는 감시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최근 우리 시장은 전면적인 개방이 이뤄진 후 시장의 경쟁요소가 가격에서 품질로 전환됨에 따라 글로벌상품의 테스트 시장이 되고 있다. 또 시장의 구매력도 커져서 외국 기업들이 중시하는 시장이 됐다. 이러한 시장여건의 변화는 무역구제제도에 대한 중요성을 한층 부각시키고 있다.
무역구제제도는 특히 외국인 투자유치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전세계적으로 글로벌 경영이 크게 진전되면서 생산요소는 가장 사업하기 좋은 지역으로 생산성과 경제성에 따라 이동하기 마련이다.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국내시장도 글로벌 기준에 의한 게임의 룰이 지배해야 한다. 시장에서 이러한 게임의 룰을 확보하는 소프트웨어적 인프라가 바로 무역구제제도다.
전세계적으로 공급이 시장수요를 훨씬 초과하고 있는 포화상태에서 불공정경쟁·출혈경쟁의 소지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열심히 기술개발해 제품을 출시했는데 경쟁국의 출혈수출로 매출이 일어나지 않는다든지, 국내시장의 판로확대를 겨냥해 현지 투자했는데 수출자들의 덤핑수출로 경영이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가 있다면 투자한 기업의 입장에서는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상대국의 부당한 교역으로 인한 피해를 신속하게 차단시켜 줄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면 어느 외국인이 투자하려 하겠는가.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소프트웨어를 제대로 갖추는 일은 외국인 직접투자 활성화를 위한 선결과제인 것이다.
세계 각국은 이러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무역구제에 대한 기능과 제도를 한층 강화해 나가고 있는 추세다. 우리나라는 이미 1987년부터 무역위원회를 만들고 무역구제제도를 전담 운영하게 하고 있지만 전문성을 더욱 강화시켜 나가야 할 시점이다. 무역구제업무는 외국의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WTO 협정상의 룰에 따라 수행해야 하므로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며 이를 미숙하게 처리할 경우 통상마찰을 야기할 수 있다. 무역구제업무를 전담하고 있는 무역위원회의 적극적인 역할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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