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교체 앞둔 정부 종합대책 마련 못해
우리경제의 버팀목이었던 IT경기가 대책 없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유가와 환율, 북한 핵사태 등 경제환경에는 이미 빨간불이 켜진 가운데 상대적으로 확고한 산업 펀더멘털을 자랑하던 반도체·휴대폰·정보가전 등 IT산업 전반이 메모리 가격 폭락, 극도의 내수 위축으로 가파른 내리막길을 걸으며 최악의 1분기를 예고하고 있다.
게다가 예전 같으면 민관 합동으로 총력 위기대응 체제에 나섰을 정부는 정권교체를 앞두고 조각 등 온통 권력구조에만 정신이 팔린 채 흔들리는 IT산업을 떠받칠 종합대책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어 자칫 구조적인 경기침체로 이어질 가능성마저 우려된다.
1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조금씩 얼어붙기 시작한 IT부문 내수가 이달부터는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급격히 침체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업계는 3월에도 불안한 국내외 여건으로 내수가 호전될 가능성이 없어 올 1분기에는 유래없는 실적악화를 기록할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 ▶관련기사 3·22면
업계 관계자들은 “불안한 국제정세로 반도체는 물론 휴대폰·가전 등 주력 수출품목의 채산성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내수마저 침체되면 수익성 악화가 불보듯 뻔하다”며 “정권교체기여서 정부의 대응책도 기대할 수 없어 걱정만 깊어간다”고 말했다.
실제로 간판 IT품목인 반도체의 경우 주력 제품인 DDR 256메가 메모리 값이 11일 현물가 기준 4달러대로 폭락했다. 지난해 중반 8달러를 넘어선 이후 8개월 만에 반토막이 났고 제조원가인 5∼6달러선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128메가 모델 역시 2달러선이 붕괴됐다.
이에 따라 메모리 생산량의 70% 이상을 DDR로 전환한 업계는 채산성은 고사하고 적자전환이 불가피한 수준으로 내몰리고 있다. 특히 2분기에는 3달러 미만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 반도체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내수를 주도해온 휴대폰은 사업자 영업정지 기간이 끝난 이달에도 수요가 회복되기는커녕 오히려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영업정기 기간이었지만 작년 동월과 비슷한 123만대가 팔렸으나 이달에는 지난해 2월보다 30% 가까이 줄어든 100만대에 그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업계는 1분기 내수 목표치 달성에 비상등 경고음을 울리고 있지만 마땅한 대책이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다.
가전 역시 지난 1월 최악의 매출을 보인 후 이달에도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월에 작년 동월 대비 20∼30% 역성장을 기록한 삼성전자·LG전자 등은 1분기는 물론 상반기안에 소비위축에 따른 매출부진이 해소되긴 힘들 것으로 보고 묘수찾기에 부심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가전전문 유통업체들은 이달들어 현재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0%의 마이너스성장을 기록할 정도로 소비위축의 직격탄을 맞고 있어 예약판매 연장, 우대고객 장기할판 등 비상대책에 나섰다.
업계 한 고위관계자는 “올들어 다행히 수출은 호조세를 보이고 있지만 지금처럼 수익성이 확보되지 못할 경우 유가상승·원화절상 등 이중의 비용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타격을 받을 것으로 염려된다”고 말했다. 또 반도체와 휴대폰 등 주력품목은 수입유발효과가 커 수출이 타격을 받을 경우 무역역조마저 걱정해야 할 처지다.
<유성호기자 shy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