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12월의 끝

 또 한해가 저물고 있다. 세모의 술렁거림 속에 모두들 올 한해를 보내면서 이런저런 결산을 할 것이다. 그 중에는 재산이 불고 주는 것과 같은 유형의 결산이 있을 것이고 한해를 얼마나 즐겁게 보냈는지를 되돌아보는 무형의 결산도 있을 것이다.

 국가적으로 돌아보면 어느 해고 다 그랬지만 올해처럼 일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때도 드물지 않나 싶다. 무엇보다도 지난 6월 월드컵 때 국내 IT 기술력을 유감없이 발휘, 전세계에 IT월드컵으로 각인시킨 일과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한판 대동굿을 벌인 일은 지금도 가슴깊이 뭉클하다. 얼마 전에는 21세기 들어 첫 대통령도 뽑았다. 일반 대중이 인터넷 온라인 공간을 통해 당선시킨 IT대통령이라고들 한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요즘 ‘바쁘다 바빠’를 외치며 살던 사람들이 한층 더 바쁘게 뛰어다녀 온 도시가 대혼잡을 이루고 있다. 평소에 살기 어렵다고 엄살을 부리던 사람들도 모두 밖으로 몰려나온 듯하다. 무슨 모임이 그리도 많은지 온통 모임의 홍수다. 어쨌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송별의 의미를 되새기는 즐거운 비명인지 발악의 극치인지는 모르지만 12월의 하루는 항상 이렇게 부산스럽게 시작하고 저물어간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대통령선거가 끝난 12월말이면 정부부처는 뒤숭숭한 게 관례처럼 됐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대선 전까지만 해도 하루가 멀다하고 많은 정책을 쏟아내던 부처들이 요즘은 조용하기만 하다. 연말이라는 것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새 대통령이 결정된 만큼 국민을 위한 중요한 정책결정이나 집행을 새 정부 출범 후로 미루는 일이 많은 탓도 있다. 오히려 새 정부가 행정개혁, 정부혁신 등을 명분으로 시도할 정부 조직개편에 대한 걱정으로 공무원들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보는 게 옳을 수 있다.

 새 대통령이 결정됐을 뿐인데 현직 대통령보다 새 대통령의 말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외교현안이 있는 다른 나라에서도 현직 대통령보다는 차기 대통령과의 접촉만 선호하는 등 이래저래 행정부는 어수선하다. 레임덕(lame duck)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요즘 각 부처 움직임을 보면 자신의 존속을 위한 조직개편 시안마련에 더 신경을 기울이는 것처럼 보인다. 이미 일부 부처의 이러한 조직개편안이 일부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물론 새 정부가 출범을 앞두고 있는 만큼 어떤 형태로든 정부조직에 손을 댈 수밖에 없어 사전 준비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새 대통령이 대선기간에 표명한 정부조직 개편에 대한 입장은 현재의 조직을 신중하게 리모델링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대대적 변화보다는 기능조정이 중심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지식정보사회의 정부는 분명 좀더 유연하고 생산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경험으로 볼 때 조직개편은 자칫하면 긁어부스럼이 될 수 있다. 대대적 개혁이냐 신중한 기능 조정이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과거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지식정보사회에 걸맞은 새로운 정부조직의 구조와 운영 메커니즘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만큼 월력의 끝, 12월말 현재 정부가 할 일 중 하나는 통치 경험을 보다 체계적으로 새 정부에 넘겨줄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이다. 각 부처 장관들은 소관부처 통솔 경험을 새 정부에 알려주어 정부조직개편이나 정책에 참고하게끔 해야 한다. 물론 새 정부도 과거 일했던 사람들의 경험과 지혜를 활용하는 여유와 지혜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정부 5년 동안 국민의 행복지수는 높아질 수 있다.

 <윤원창 IT담당 부국장 wcy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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