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cglee@stepi.re.kr
지난 몇 년 동안 남북 경제협력이 큰 폭으로 확대되면서 과학기술협력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탄생했다. 이 가운데 두세 과제가 성공적으로 추진되어 많은 과학자들이 남북한 과학기술협력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다. 그러나 과학기술협력은 아직도 남북협력의 중심부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협력 범위가 좁고 대상이 한정적이며, 내용 면에서도 북한 과학기술계의 현실과 당면과제를 잘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남한의 과학기술부와 출연연구소 기능을 겸비한 중추기관인 북한 과학원과의 협력이 거의 없었다. 따라서 현행 남북한 과학기술협력은 대부분이 공식적인 창구없이 개별적인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 이에 비해 해외 동포들은 넓은 분야에서 북한의 실정에 상당히 근접한 과학기술협력을 전개해왔고, 그 동안 상당한 경험을 축적했다. 북한 과학원 내에 해외 동포를 전담하는 2국이 설치되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서는 약 2년 전부터 이들 해외동포를 포함한 북한 과학원과의 협력을 추진해왔다. 다행히 과학기술부와 재일본조선인과학기술협회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지난 10월에 북한 과학원과 남한 정부출연연구소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통일과학기술심포지엄’이 성공적으로 개최됐다. 이 때 과학원 2국 국장을 단장으로 하는 다섯명의 북한 과학자들은 높은 학식과 개방적인 자세, 적극적인 협력의지로 우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북한 과학원과의 공식적인 협력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북한 과학원은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52년 창설되어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다. 작년에 발행된 자료에 의하면, 북한 과학원은 산하 8개 분원에 100여개의 연구소를 가지고 있고 여타 내각과 위원회에 속해 있는 100여 연구소들을 과학적, 기술적, 행정적으로 지도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함흥분원과 세포 및 유전자과학분원, 첨단분야 등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설비개선과 조직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몇 번에 걸쳐 과학원을 현지 지도한 것도 분위기를 일신해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를 토대로 내년부터는 ‘새 과학기술발전 5개년 계획(2003∼2007년)’을 추진할 것이라 한다. 그 내용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대체적으로 첫째, 전력·석탄 등의 에너지 산업과 금속·기계·화학 등의 기간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인민경제의 기술적 개건. 둘째, 식량문제 해결 중심의 인민생활 개선. 셋째, IT·BT, 신소재 중심의 첨단과학, 기초과학 등으로 나뉘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 경제를 살리는 막중한 업무를 과학기술계가 지고 있는 만큼 이를 지원하는 과학원과 산하 연구원들의 의지와 노력도 더욱 커질 전망이다. 따라서 남한의 대북한 과학기술협력도 북한 과학원의 개편과 당면 연구과제에 맞추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대북한 과학기술협력이 북한의 최고 책임기관인 과학원 중심으로 전개되어 좀 더 포괄적인 면모를 갖추기를 바라는 것이다.
21세기 첫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그 누구보다도 남북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대화진전에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하였고, 이제 많은 국민들이 주목하게 되었다. 남북관계에 있어서 핵문제, 철도 연결, 관광, 경제특구, 북미관계 악화 등 상당한 난제가 존재하지만 온 국민의 뜻과 정성을 모아 제반 문제들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남북간 대화와 협력을 한 단계 격상시켜 주기를 바란다.
과학기술협력은 북한에 있어 특히 중요하고 다른 분야에의 파급효과가 크므로 남북협력의 중심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특히 북한의 중추기관인 과학원과의 새로운 협력은 당사자들간 공식적인 창구개설과 포괄적인 협력의제 교환, 북한의 현실문제 해결, 통일을 지향하는 한 단계 높고 성숙한 남북한 협력 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그 의미가 상당히 큰 만큼 새 정부에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줄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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