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세계 정보기술(IT) 부문 여성 최고경영자(CEO)들의 성적은 전반적으로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CEO로서 IT업계의 주목을 받은 인사로는 HP의 칼리 피오리나, e베이의 멕 휘트먼, 루슨트테크놀로지스의 패트리샤 루소 등 ‘3인방’과 제록스의 앤 멀케이, 핸드스프링의 도나 더빈스키를 꼽을 수 있다.
이들 여성 CEO는 올해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 ‘A에서 F에 이르는’ 극과 극을 경험했다. 휘트먼이 추진력을 내보이며 A를 받았고 피오리나가 델컴퓨터와 합병을 무리없이 마무리지으면서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은 반면 루소같이 ‘지옥’을 경험한 CEO도 있었다.
◇피오리나=그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업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막바지에 온 컴팩컴퓨터와의 합병 건도 있지만 주된 이유는 역시 그녀의 경영능력 때문이었다.
HP는 10월 말로 마감한 회사 4분기 결산에서 양호한 실적을 올렸다. 순익은 3억9000만달러로 작년 4분기의 9700만달러에 비해 4배 증가했고 주당순익도 13센트로 지난해의 5센트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HP의 실적이 이같이 호전된 이유는 피오리나가 주도한 구조조정이 효과적으로 진행된데다 매출도 당초 예상을 웃돌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녀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부문은 합병과정에서였다. 기획하는 단계 못지 않게 중요한 추진단계에서도 피오리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내년 경기도 여전히 불안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 PC사업부가 내년 상반기 말 흑자로 돌아설 것이며 기업부문 사업부도 내년 중 흑자 전환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프린터 사업부 순익은 내년 중 13∼15%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P 주주들과 내부에서는 불안해하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그녀의 회사 장악력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휘트먼=e베이는 올해 상당한 소득을 거뒀다. 3년 이상 연속순익을 기록하며 온라인경매라는 비즈니스모델이 시장에서 확고히 자리를 잡고 있음을 실증했고 더욱이 온라인소매 부문에서는 아마존과 함께 명실상부한 양강체제를 구축했다.
연초 e베이는 산뜻한 출발을 했다. 1분기 순익이 예상치를 웃돌았고 이같은 쾌속행진은 연말까지 이어졌다. 3분기 순익은 1년사이에 3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용자 증가에 따른 건전성에 기반한 것이었다. 4분기에는 15억달러에 달하는 온라인 결제서비스업체 페이팰의 인수에도 불구하고 순익만 다소 감소했다. 업계에서도 “페이팰 인수는 e베이의 핵심사업 성장세가 정점에 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후한 평가를 내렸다. e베이는 페이팰 인수로 사업 다각화를 모색할 수 있고 페이팰은 e베이의 새로운 ‘캐시 카우’로 떠올랐다. 아울러 합병을 주도한 휘트먼도 그동안 “추진력이 부족하다”는 세론을 일축하고 ‘결단해야 할 때 결단하는’ CEO로 급부상했다.
◇루소=올해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3분기들어 루슨트는 28억달러의 적자를 내면서 10분기 연속적자를 기록, 루슨트의 주가는 9월 들어 마침내 1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통신업계의 설비투자가 대폭 감소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99년 100달러를 웃돌던 주가가 1달러까지 주저앉았다는 사실은 업계 안팎에 거의 ‘쇼크’ 수준으로 다가왔다.
루슨트 주식이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상장폐지 위기에 처하자 회사측은 주식병합을 통해 주가를 끌어올린다는 비상대책을 내놓았다. 위기극복을 위해 루소는 회사 전체 인력의 70%를 감원하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하지만 종업원들의 사기는 이미 땅에 떨어진 상태. “시장환경 악화에도 불구하고 2003회계연도에는 흑자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그녀의 말도 신뢰성을 상실한 게 사실이다. 다만 주주들은 ‘역전의 챔피언’이라 불렸던 그녀가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켜 주리라는 기대만은 포기하지 않고 있다.
◇멀케이=루소보다는 상황이 다소 나았다. 수익을 내지 못하는 생산라인을 대폭 감축하는 등 비용절감 노력으로 3분기 흑자를 기록할 수 있었다. 그러나 회계부정 스캔들은 여전히 제록스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지난 9월 제록스는 4년간 이익을 30억달러나 부풀린 것과 관련해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제기한 민사소송을 해결하기 위해 1000만달러의 벌금을 물었다.
“SEC와의 합의로 회계부정건은 완전 해결됐으며 이 문제가 다시 불거지지 않을 것”이라는 발표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제록스의 주가하락세는 시장의 신뢰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더빈스키=그녀에 대한 평가는 다소 이른 감이 있다. 핸드스프링 공동 창업자이긴 해도 PDA시장이 성숙단계에 이르기도 전에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 한해 데이터는 그녀에게 후한 점수를 주기에는 힘든 게 사실이다. 업계 만년 3위자리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고 경기침체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주식병합설이 흘러나오는 등 실적이 그다지 뛰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100달러 이하의 저가 PDA ‘트레오’가 성공을 거둘 경우 그녀에 대한 평가가 180도 바뀔 가능성은 충분하다.
<허의원기자 ewh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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