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안주땐 글로벌 경쟁서 도태
IT산업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던 ‘사이버 종합건설업’ SI산업이 경쟁력 악화와 출혈경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경험과 기술이 풍부한 외국 기업들에 시장을 내주고 공멸할 것이라는 위기의식도 팽배해지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SI가 미래 IT산업을 부양하는 토대로서의 역할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역할은 강조되는 데 경쟁력은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 6회에 걸쳐 SI업계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21세기형 비즈니스 모델 정립을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편집자
◇글싣는 순서
1.순풍의 돛단배는 없다
2.도마에 오른 기업경쟁력
3.인력양성과 품질향상
4.컨설팅-프로젝트 성패의 관건
5.전문성이 생명력
6.제3의 길-해외진출
국내 ‘30대 SI기업’은 재계 ‘30대 기업 계열사’와 같은 뜻으로도 통한다. 이들은 거센 정보화 바람 속에 폭주하는 계열사 물량만을 갖고도 한때 매출의 70∼80%를 채울 수 있을 만큼 안정적인 수요처를 갖고 있었다. SI시장은 그만큼 ‘순풍에 돛을 단 배’였다. 그러나 안정적 물량이 절대적으로 줄어들면서 3∼4년 후 현재의 위치를 고수할 곳은 불과 5∼6개사에 불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금 돌출된 문제점을 그대로 방치하다가는 인수합병 등을 통해 문을 닫을 것이란 게 업계 스스로의 관측이다.
저마다 처한 상황에는 차이가 있지만 SI업계는 요즘 저가입찰 관행, 생산성 저하, 전문성 부족 등 기업경쟁력을 악화시키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게다가 컨설팅과 아웃소싱 같은 고부가가치 분야는 외국계 기업들에 돌아가고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낮은 시스템 인티그레이션 또는 시스템 관리 등의 분야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SI산업은 지난 20년 동안 해마다 두자릿수의 성장률을 유지하면서 IT산업의 핵심 분야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7조원대를 넘어선 SI산업은 PC와 이동통신단말기 시장규모를 훌쩍 뛰어넘어 올해는 10조원대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SI사업에 일부나마 발을 담그고 있는 기업도 2000개에 달할 만큼 외형적으로 크게 팽창했다.
그러나 문제는 채산성이다. 정확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지만 업계 선두를 달리는 한 기업은 최근 외부진단을 통해 과반수 이상의 사업부문에 대해 ‘사업성 불투명’ 판단, 즉 사실상의 ‘철수’를 권고받기도 했다. SI업체들이 경기침체와 맞물려 소속그룹에서 ‘존재이유’와 ‘역할’에 대한 근본적 물음에 직면해 있는 것이 그 단적인 예다. 일부에서는 SI계열사가 과연 그룹의 가치와 경쟁력을 향상시켰는가를 따지며 존속 및 매각, 통합 여부를 놓고 고민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와중에서 외국계 기업의 도전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EDS 등 유수의 기업들은 호시탐탐 한국 SI업체의 인수·제휴를 통해 시장점유율 확대를 노리고 있다. 더욱이 최근 인도와 중국 등 아시아권 기업들의 도전에도 직면한 상황이다.
이런데도 업계는 글로벌 경쟁시대의 대안을 세우기보다는 발등에 불끄기에 바쁘다. SI업계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측면이 꼽힌다.
첫째, 기업경영의 후진성이며 이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저가입찰 관행이다. 너도나도 한 건 올리기식으로 뛰어들다보니 국내 SI 시장상황은 악화되고 고질적 문제인 ‘고비용·저수익’ 사업구조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사업을 수행했지만 이익은 없는 것이다. 게다가 납기나 프로젝트 일정에 차질이 생겨 지체상금 물기가 일쑤다. 소속그룹에 대해 지나치게 높은 매출의존도 역시 경쟁력을 약화시켜온 요인으로 지적을 받고 있다.
둘째, 서비스 품질력 향상과 고급인력 양성 노력이 미흡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과징금을 물거나 외부에 관리감독 조직을 따로 운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SI업계 최대 자산은 인재’라는 말에 걸맞지 않게 수천명의 직원을 거느린 10대 기업 가운데 8개사가 100명 이하의 기술인력만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영세하다.
셋째, 프로젝트 성패의 관건인 컨설팅 능력의 부족이다. 특히 수요를 창출하는 컨설팅 전문인력과 방법론면에서 취약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IT·경영 컨설팅 프로젝트는 외국계 기업이 거의 독식하고 있다시피하다. 컨설팅 노하우가 빈약한 SI업체들이 단순 인력공급업체로 전락하고 마는 것은 이제 세계적인 추세다.
넷째, ‘선택과 집중’ 전략 차원에서 전문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을 주도하는 3∼4개 대형 업체조차 전문성이나 특장점 없이 종합건설회사처럼 자본력과 대기업의 기업영향력을 앞세워 온갖 분야에 손을 뻗치고 있다. 중견·중소 업체 역시 확실한 강점 분야가 없어 전문SI 분야에 역량을 집중하지 못한 채 대기업과의 하청관계에 연연해하고 있다.
다섯째, 유력한 대안으로 부상한 해외시장 진출이 전술적으로 많은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임금·비용면에서는 우위지만 언어·문화 장벽, 브랜드 이미지, 서비스 품질 및 마케팅 능력 부족 등으로 선진시장에서는 밀리고 있는 것이다.
SI가 앞으로도 IT산업의 성장을 이끌 전략분야로서의 역할을 재정립하기 위해서는 이같은 문제점들을 과감히 개선해야 할 것이다.
<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