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반도체와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전략적 협력’ 선언을 한 지 만 1년이 지났다.
지난 92년부터 99년까지 마이크론의 주도하에 미국정부가 우리정부를 상대로 D램 반덤핑 소송을 벌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양사의 협력선언은 업계에 충격 그 자체였다.
하지만 ‘과연 화합이 가능할까’는 우려 속에서 추진되던 양사의 연합은 결국 무위로 돌아갔다. 하이닉스와 마이크론간의 협상성사 여부도 불투명한 마당에 우리정부와 하이닉스 채권단 등이 가세, 이해관계가 실타래처럼 얽히면서 시간과 정력만 낭비한 셈이 되고 말았다.
◇결과가 예고된 협력선언=대등한 수준의 양사가 시장환경을 개선해보고자 협력할 방안을 찾는다면 서로 대승적인 차원에서 협력방안을 모색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양사의 협력논의는 불평등한 위치에서 진행된 터라 좋은 결과를 도출하기란 사실상 처음부터 무리였다.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 부실기업 처리의 원론을 내세운 정부는 빅딜실패의 원죄에서 벗어나고자 국내에서는 물론 미국에 건너가서까지 하이닉스 매각론을 펼쳤고 그때마다 하이닉스의 매각가치는 하락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헐값에 사려는 마이크론, 매각을 아쉬워하는 하이닉스, 빚청산을 독촉하는 채권단, 매각의 원칙을 강조하는 우리정부, 반도체산업의 후퇴를 우려하는 관련업계가 팽팽한 신경전을 펼치면서 시간이 갈수록 협상은 꼬여만 갔다.
지난 4월에는 채권단 대표가 외환은행장에서 한빛은행장으로 급작스레 변경되며 매각 MOU안을 도출해내기도 했으나 채권단 전체의 동의 이후 하이닉스 이사회의 반대로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협력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면 하이닉스 이사회가 동의했더라도 양사의 협력은 깨질 수밖에 없었다는 게 정설이다.
마이크론은 잔존법인(비메모리 회사)에 대한 채권단의 지원을 요구하며 각 채권금융기관의 지원합의 서명을 요구했지만 채권단은 MOU안에는 우여곡절 끝에 동의한 반면 추후 자금지원에 대해선 완전 동의할 계획이 없었기 때문이다.
◇왜 하이닉스였나=지난해 하반기 주력 메모리인 128Mb SD램의 가격이 생산원가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1달러 미만으로 추락하자 마이크론의 핵심간부는 한국을 비밀리에 방문, 감산 및 과당경쟁 자제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는 절반의 성공. 삼성전자는 마이크론의 제안에 꿈쩍도 하지 않았고 감산의 필요성을 절감해온 하이닉스는 독자적인 판단의 근거를 들어 감산에 들어갔다.
당시 하이닉스를 방문한 마이크론 관계자는 경쟁업체에서 하이닉스 도태론을 언급했다는 말을 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이를 계기로 하이닉스와 마이크론 사이에선 ‘우리 한번 잘해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후문이다.
양사는 그후 서로 제휴할 부분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했고 결국 하이닉스 메모리 부문을 마이크론이 매입하고 별도의 비메모리 사업에서 공조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모았다.
제휴선언의 배경은 그렇다지만 마이크론 입장에선 하이닉스 메모리 부문을 확보할 경우 얻을 수 있는 효과에 매력을 느꼈다 한다. 우선 1차적으로 자사 외에는 매수주체가 없고 팔려고 하는 한국정부와 채권단의 원칙에 따라 회사를 값싸게 살 수 있는 좋은 기회인 데다 D램 수급조절로 누릴 수 있는 반대급부는 매수비용을 훨씬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등 그야말로 남는 장사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동진정책을 중시하는 마이크론이 하이닉스가 개척해놓은 중국시장을 송두리째 가져올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가 예상됐다.
◇공멸이냐, 공생이냐=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협력이 실패로 돌아간 현재 하이닉스는 2년간의 설비 및 기술투자 공백이 지속되고 있고 마이크론은 차세대 설비투자의 기회를 놓치는 한편 8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중이다.
이 가운데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메모리·비메모리의 균형적 포트폴리오를 통해 점차 세력을 확대해가고 있는 독일의 인피니온테크놀로지, 정부의 지원과 과감한 투자로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대만의 난야테크놀로지 등의 공세로 향후 전망도 불투명해졌다.
또 동지가 될 뻔했던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다시 적의 입장으로 돌아서 국가간 특혜시비 관련 소송에 휘말리고 있다. 두 회사 모두가 전망했던 올 하반기 D램 수요증가와 가격회복, 불황탈출의 시나리오는 이미 물건너 갔을 뿐만 아니라 향후 얼마나 더 지속될지 가늠할 수 없는 위기상황에 봉착해 있다.
선의의 경쟁은 없고 배타적인 생존경쟁만이 존재하는 메모리업계의 구조상 다시 1년이 지난 내년말 두 회사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
◇하이닉스-마이크론 지난 1년간 협상 및 소송 경과
▶2001.11.22:마이크론 스티븐 애플턴 회장 방한, 하이닉스와 전략적 제휴 의사 피력
▶2001.12.3:하이닉스반도체와 마이크론테크놀로지 전략적 제휴추진 공식발표
▶2001.12.5:마이크론 예비실사 및 1차 협상(2001.12.10 종료)
▶2001.12.19:하이닉스 박종섭 사장 방미 2차 협상(2001.12.25 귀국)
▶2002.1.7:마이크론 애플턴 회장 내한 3차 협상
▶2002.1.23:하이닉스 박종섭 사장 방미 4차 협상(2002.1.27 귀국)
▶2002.2.6:하이닉스 박종섭 사장 방미 5차 협상(2002.2.9 귀국)
▶2002.2.13:마이크론 제안서 하이닉스 앞 제출
▶2002.2.18:채권금융기관 운영위원회 개최(마이크론 제안서 설명 및 의견 청취)
▶2002.2.25:마이크론에 하이닉스 수정 제안서 송부
▶2002.3.6:하이닉스 박종섭 사장 방미 6차 협상(2002.3.17 귀국)
▶2002.3.19:마이크론 수정제안 하이닉스 앞 제출
▶2002.4.19:MOU 체결(하이닉스, 채권단 운영위원회, 구조조정특위, 마이크론)
▶2002.4.29:채권단 회의(MOU 및 잔존법인 구조조정방안 승인)
▶2002.4.30:하이닉스 이사회(MOU 부결)
▶2002.5.2:마이크론 애플턴 회장 협상 종결 발표
▶2002.5∼2002.8:하이닉스-마이크론 두세차례 재협상설 루머, 해프닝으로 끝나
▶2002.9:마이크론 7분기 연속 적자 기록
▶2002.11.3:마이크론 미국 상무부에 한국산 D램에 상계관세 부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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