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0년대 일본 여행객과 국내 주부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대표적 가전브랜드인 코끼리 전기밥솥, GE·월풀의 양문여닫이냉장고 등은 언제부턴가 국내 소비자들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차진밥’을 선호하는 한국인들의 기호와 취향을 겨냥한 국산 전기압력밥솥이 등장했고, 한국형 디자인과 초절전을 내세운 양문형냉장고 ‘지펠’ ‘디오스’가 출시되면서 외산은 틈새상품으로 전락했다.
반면 99년 6월의 수입선다변화제도 폐지와 아날로그를 대체하는 디지털 바람을 타고 일부 일본계 디지털 가전업체가 국내시장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요즘 가전유통시장에서 디지털캠코더·디지털카메라는 외산의 국내시장 잠식이 가장 두드러진 품목으로 꼽힌다. 소니·JVC·파나소닉 등 5∼6개 일본회사가 캠코더 시장점유율의 7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올림퍼스·소니·후지·코닥·캐논 등 카메라 업체들의 점유율도 75%에 육박하고 있다. 전세계 시장점유율 1위 업체가 생산하는 히트상품들이 국내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외산업체들의 성공적인 한국상륙과 연착륙의 이면에는 국산제품에 비해 품질과 기술적 우위, 브랜드와 디자인 파워외에 철저한 현지화·한국화 노력이 자리잡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소니와 올림퍼스의 예를 들어보자. 최근 1∼2년새 이들 일본 기업의 현지화 노력을 잘 살펴보면 표면상 나타나는 한국인 지사장 임명이란 모양새 이외에 그 무엇인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소니가 지난 2000년 2월 히로시게 요시노리 후임에 장병석씨를 소니코리아 사장으로 발탁한 데 이어 2001년에는 삼성 출신의 이명우씨를 발탁했다. 올림퍼스도 국내법인을 설립하면서 초대 사장에 삼성출신 방일석 사장을 임명했다.
‘한국시장은 한국인이 가장 잘 안다’는 판단을 바탕으로 경영권을 과감히 한국인에게 넘긴 본사의 결정에 화답이라도 하듯 이들 CEO는 스피드한 경영과 AS 향상으로 올해 각각 매출액 7000억원, 디지털카메라 시장 1위라는 화려한 성적을 내고 있다.
이명우 사장은 상품회전이 빠른 한국 가전유통시장의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그랜드베가TV를 한일시장에서 동시에 출시하는 등 ‘타임 투 코리안마켓’ 경영을 실현했고 직원들의 고객만족(CS) 마인드 고취를 위해 노력했다. 방일석 사장도 빠르게 변하는 국내시장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조직슬림화와 스피드경영으로 대응했다. 본사 인력에겐 영업과 마케팅을 맡기고 기타업무는 아웃소싱으로 해결토록 했다. 방 사장 본인은 회계·인사·경영권을 독립적으로 행사하면서 한국에서 창출되는 이익을 100% 재투자하는 권한까지 위임받았다.
한국코닥의 예에서 보듯 밀수품의 유통을 줄이는 대신 정품구매를 유도하기 위해 한글화된 사용설명서, 기술자료를 제공하는 것은 이제 일본뿐 아니라 미국계 가전회사들에도 상식이 됐을 정도다.
외국가전업체들에겐 최근 몇년새 수요층이 제한된 고가품 위주의 제품라인업과 점진적 진출을 통해 시장적응력과 지배력을 키우는 현지적응 노력을 해온 것이 무리없는 ‘한국 상륙작전’을 뒷받침한 힘이 됐다.
세계적 가전업체들은 최근 1∼2년새 한국형 제품 개발은 물론 현지 CEO 채용을 통한 현지형 경영을 확산시켜 나가면서 세계 가전의 격전장으로 급부상한 한국시장에서 새로이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원석기자 stone201@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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