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스토리](42)검정고무신(1)

 직접 기획과 제작에 참여해 완성했던 TV애니메이션 ‘꼬비꼬비’가 기대 이상으로 좋은 반응을 보이면서 창작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됐다. 그래서 해외 OEM 작품을 제작하면서 회사 여건은 다소 좋아졌음에도 창작에 대한 미련은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특히 TV를 틀면 여지없이 일본 작품들이 국내 TV애니메이션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모습이 보여 안스러울 때도 많았다. 이런 식으로 어린이들이 일본 애니메이션에 노출된다면 우리 가슴 속에 담긴 문화는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가슴 한켠에 있었다. 특히 우리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한국의 얼과 혼을 자식들에게 전달하고 그리고 그들이 물려받은 얼과 혼을 다시 후손들에게 전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OEM 제작으로 인해 다소나마 생긴 재정적 여유를 바탕으로 자력으로 창작품을 만들어서 어린이들에게 선사해야 겠다고 결심했다. 에니메이션으로 지금까지 생계를 꾸려왔으니 앞으로는 우리가 벌은 돈을 다시 어린이들에게 돌려줘야 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틈만나면 나의 가슴을 울리는 소명은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낮에는 회사에서 외국 OEM 작품과 씨름을 하고, 밤이되면 집에 들어가 작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98년 여름 어느날.

 KBS 에니메이션 담당 민영문 PD가 점심식사나 하자고 회사로 찿아왔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과거에 제작했던 ‘아기공룡 둘리’ ‘옛날옛적에’ ‘날아라 슈퍼보드’ 등 그리고 당시 방영되고 있는 작품들에 대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눴다. 그러더니 대뜸 민 PD가 ‘건빵한봉지’와 ‘검정고무신’이라는 만화책 2권을 꺼내 탁자위에 살며시 올려 놓았다.

 늘상 그랬듯이 어떤 게 애니메이션으로 적합한지 한번 검토해보라는 뜻이었다.

 그때 당시는 IMF 시절이어서 60년대 가난하여 못먹고, 못입으며 궁핍하게 살던시절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었다. 모 언론사에서 개최한 인형전도 60년대의 어려움을 담아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킨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래서 두 작품가운데 마음이 끌렸던 작품은 단연 검정고무신이었다.

 검정고무신은 만화작가들이 어려움은 많았지만 꿈과 희망을 잊지 않았던 60년대를 회상하며, 그때를 경험해 보지 못한 현재의 어린이와 젊은이들에게 당시의 시대상황을 묘사해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참 우연이었다. 민 PD로부터 책을 받기 이전에도 사실은 에니메이션 시나리오 작가인 이광조씨와 이런 류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해서 검정고무신은 연재물 만화책에서 TV에니메이션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던 일본 애니메이션들과 시청률 경쟁을 펼치며 한국 애니메이션의 자존심이라고 불리는 검정고무신은 이렇게 어찌보면 우연스럽게 탄생하게 된 것이다.

 <세한동화 송정률 대표겸 감독 saehahn@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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