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 인력의 인재 이탈현상 심화 등으로 국내 기술 인력의 수급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안이한 인력정책과 제도에서 비롯된 면이 크다. 고급인력 양성도 미비하고 기껏 육성한 우수 인력도 해외로 빠져나가는 우리나라 인력 시장의 현주소는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고급기술 및 과학인력 확보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를 맞아 이미 유럽 등 주요 선진국은 우수기술 인력 양성을 국가 전략의 최우선 순위로 삼고 적극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유럽은 과학기술 인력에 초점을 맞춰 우수 인력을 양성해오고 있다.
유럽 국가 중 프랑스는 기술 인력을 우위에 두는 대표적인 나라로 꼽을 수 있다. 이는 프랑스의 혁명 기념일 행사에서도 알 수 있다. 7월 14일 프랑스혁명 기념일에는 파리의 콩코드광장에서 개선문까지 군사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각 군 대표와 사관생도들이 참가하는 이 퍼레이드에는 언제나 ‘에콜 폴리테크닉(기술대학)’ 학생들이 선두에 서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관학교도 아닌 이공계 학교일 뿐인 에콜 폴리테크닉 학생들이 선두에 서게 된 것은 나폴레옹 시대부터 내려오는 전통이다. 원래 기술계 장교를 배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에콜 폴리테크닉을 포병장교 출신인 나폴레옹 1세 황제가 중시하면서부터 이공계 우대라는 전통이 일찍이 자리잡은 것이다.
지금도 에콜 폴리테크닉은 명예와 출세의 상징이다. 과학기술 전공이지만 과학자나 엔지니어로만 국한되지 않고 국가 고급 공무원이나 대기업 간부 자리가 보장된다. 비슷한 이공계 그랑제콜인 ‘에콜 드 민(광산학교)’이나 토목공과대학인 ‘퐁제쇼세’도 광산이나 토목 현장보다는 정부의 에너지 건설 관련 부처의 고급 공무원으로 일하는 게 보통이다. 실제로 프랑스 과학기술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고위 공직자는 거의 이공계 그랑제콜 출신이다.
명문 그랑제콜뿐만이 아니다. 일반 이공계 대학도 인문계 대학 출신보다 앞날이 탄탄하다. 취직이 90% 이상 보장되는 것은 기본이고 인문계 출신과는 달리 기업체 간부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도 있다. 인문계 출신들의 대졸 초임이 1500유로(약 170만원) 안팎인 반면 이공계는 2500유로(약 280만원) 정도다.
여기에다 전국 각 지방과 기업체의 인력 수요를 각 대학과 연구소의 이공계 인력 공급과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기술 플랫폼’ 제도까지 도입되면서 이공계 인력 활용도는 더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이 같은 이공계 우대 전통이 오늘날 프랑스를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의 무기 수출국이자 첨단 전투기 라팔과 초음속 콩코드 여객기 및 상업용 위성 개발을 자랑하는 항공우주 기술국 그리고 초고속 열차 테제베(TGV)를 수출하는 교통통신의 일류 국가로 만들었다.
이는 프랑스뿐만이 아니다. 정보기술 강국으로 부상한 스웨덴과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 역시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와 연구 개발 인력에 쏟는 노력이 남다르다. 발명의 나라로 유명한 스웨덴. 노벨의 다이너마이트를 비롯해 주사기, 지퍼, 프로펠러, 인공호흡기, 전화스위치 등 셀 수 없는 발명품들이 스웨덴인의 손에서 나왔다. 이는 반복과 암기식 교육을 철저히 배제하고 창의성을 중시하는 교육 풍토에서 나온 열매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스웨덴의 창의성 제일주의는 교육기관의 학생 평가방식에서 엿볼 수 있다. 스웨덴 학생들은 ‘자신만의 새로운 것을 얼마나 제시하는가’에 따라 평가를 받는다. 달달 외워 답안을 쓰는 수동적인 자세가 아닌 독창적이고 창의성에 중점을 두고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스웨덴은 동시에 근로자에 대한 평생교육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라는 인식 아래 인적자원의 지속적인 재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스웨덴 정부는 평생학습계좌(individual learning accounts) 제도를 올해부터 시행하고 있다. 개인과 기업이 공동으로 기금을 조성해 평생계좌를 만들고 이를 이용하는 국민에게 과감한 세제혜택을 준다는 게 이 계획의 골자다. 즉 평생계좌에서 돈을 인출해 직업교육을 받으면 최대 25%까지 세금감면 혜택을 주어 재교육에 국민들이 스스로 나서도록 한다는 것이다.
연구개발(R&D) 인력도 북유럽 국가를 강국으로 이끄는 원동력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이 분야 투자비중은 스웨덴 3.9%, 핀란드 3.1%로 세계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이들 나라는 이런 투자의 절반 가까이를 정보통신 산업에 집중하고 있다.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덴마크, 스위스 등 이른바 ‘작지만 강한 나라’로 불리는 서유럽 중소형 국가도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가장 역점을 두는 분야가 바로 인적자원이다.
인구가 적은 이들 국가는 노동집약적인 산업에 특화할 수 없었기 때문에 외부로부터의 유입된 자본과 고급 인력을 결합시켜 고부가가치 산업에 특화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뛰어난 인적자원을 기반으로 첨단 제약산업, 금융업, 연구개발기지 등 고부가가치 산업에 특화한 스위스를 들 수 있다.
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위해서 서유럽 중소형 국가는 인력과 기술 개발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세계에서 1인당 공적 교육비 지출이 가장 많은 7개 국가, 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가 가장 많은 10개국 중 6개국이 서유럽 중소형 국가다. 이들 중소형 국가의 1인당 공적교육비 지출은 독일, 프랑스 등 유럽의 강대국들보다도 크게 앞서 있으며 미국의 두 배에 육박한다. 교육리서치 전문기관 IMD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유럽 중소형 국가들의 초중고등학교의 교육 인프라는 세계 최고 수준이며 대학교육에 대한 기업의 평가도 미국과 유럽의 강대국들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과 기술 개발에 투자한 결과 유효 특허 건수의 인구 천명 대비 비율은 스위스가 12.4건, 스웨덴 10.8건 등으로 대부분의 서유럽 중소형 국가가 미국(4.3건)과 우리나라(1.6건)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이들 국가는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를 통해 고부가가치 산업에 특화함으로써 부유한 국가가 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강병준 기자 bjkang@etnews.co.kr>
소박스/연구 중심 대학의 성공 모델- 독일의 대학
대학 연구체계와 관련 유럽 지역에서 모델이 되고 있는 나라가 바로 독일이다. 독일은 탄탄한 대학의 연구체계를 기반으로 국가 경쟁력이 보탬이 되는 우수한 기술 인력을 끊임없이 배출해 대학 인력 시스템의 성공모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연구 중심 대학의 모델로 꼽히고 있는 곳이 바로 독일의 대학이다.
독일의 대학은 19세기 연구와 교육의 일치를 중심으로 하는 ‘훔볼트의 이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훔볼트의 이념은 1810년부터 1870년대에 이르기까지 독일 주요 대학 연구 시스템에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 시기에 등장한 베를린대학, 하이델베르크대학, 튀빙겐대학, 뮌헨대학 등은 독일 대학이 강점으로 내세우는 ‘연구 중심 대학’의 원조격이다.
독일 연구대학은 ‘교육-연구 실험실’과 ‘교육-연구 세미나’ 두 제도를 통해 연구 중심 대학으로 부상했다. 교육-연구 실험실은 강의와 연구, 교육이 같은 공간에서 이뤄져 학생들에게도 연구 역량을 키워주었다. 교육-연구 실험실의 원조격인 대표기관은 1826년부터 약 30년 동안 지속된 기센 대학의 화학교수 리비히의 실험실이었다. 리비히의 성공은 19세기 후반 이후 독일의 과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연구 모델이 되었다. 교육-연구 세미나는 인문학 분야에서 비공식적으로 시작되었으나 강의 중심에서 교수와 학생의 대화와 토론으로 진화했고 이 과정에서 교육과 학습의 내용도 바뀌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프란츠 노이만이 1834년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만들어 40년 동안 이끌었던 수학물리학 세미나를 꼽는다. 노이만은 세미나를 통해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었고 학생들은 이 과제를 마친 후 세미나에서 교수와 함께 이를 논의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프란츠 노이만은 독창적인 물리학 연구의 길을 열었으며 우수한 인력을 배출할 수 있었다.
세미나와 실험실을 통해 대학에 연구가 정착되자 대학 교수의 임용 기준이 연구 중심으로 강화되었고 이는 다시 대학의 연구 확산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연구 실적이 중요해지면서 교수들은 교수자격 청구논문을 쓴 후에도 계속 연구 업적을 쌓았고 신임 교수직을 놓고 경쟁하게 되었다. 또 당시 팽창하고 있던 독일 대학은 서로 더 좋은 교수를 영입하기 위한 경쟁을 펼쳤고 이는 다시 교수 사이의 연구 업적에 대한 경쟁을 유발하는 피드백 효과를 발휘했다. <강병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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