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본과 같은 음악선진국에서는 뮤지션이 스스로 음악을 만들어 싱글앨범을 발표한 뒤 전국투어를 통해 실력을 선보인다.
여기서 대중의 관심을 끌면 정규앨범을 내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상파TV 가요프로그램이 스타로 성공하기 위한 등용문인 것과는 사뭇 다르다. 대형 음반기획사의 힘에 눌려 인디레이블이 빛을 보지 못하는 것도 우리만의 특이한 모습이다. 그러나 최근 국내 대중음악에도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어 고무적이라는 평이다.
최근 들어 윤도현밴드·체리필터·자우림·크라잉넛·불독맨션·언니네이발관·부활 등 록밴드가 강세다. 젊은층 사이에서는 이들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실제로 이들 록밴드는 각종 음반 판매량이나 인기순위 차트의 상위권에 랭킹돼 있다. 음반유통사인 미디어신나라가 집계한 판매량 순위에 따르면 윤도현밴드는 28주째 9위에 머물고 있으며 ‘낭만고양이’로 유명한 체리필터도 9주째 12위에 올랐다. 자우림, 불독맨션도 각각 15위, 25위로 중위권에 랭킹돼 있다. 특히 불독맨션은 지난주 31위에서 25위로 뛰며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그냥 음악이 좋아서, 노래하는 것이 좋아서 시작한 인디밴드 출신으로 일명 ‘라이브 가수’로 통한다. 대중과 직접 호흡하고 싶어 라이브 무대만 고집하기 때문이다. 가창력에 자신이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뛰어난 음악성에도 불구하고 록밴드는 빛을 보지 못했다. TV가요 프로그램이 양산한 ‘주류 가수’에 가려 언제나 음지에 있었던 것이다.
최근의 록밴드 인기가 이례적으로 여겨지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록밴드의 인기는 라이브공연 활성화, 음반판매 촉진, 인디밴드의 주류 입성이라는 선순환이 이뤄지는 기폭제로서 국내 대중음악이 한단계 성숙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음악평론가 임진모씨도 “대중음악의 무게중심이 라이브공연으로 옮겨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며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다.
◇인디 레이블 부상=후반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급격히 대형화하던 90년대 후반, 음반기획 및 제작사들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덩치가 커졌다. 음반업계에도 규모의 경제가 도입돼 고가의 뮤직비디오를 찍고, TV에 한 번이라도 더 많이 내비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로 인식됐다. 실력있는 뮤지션보다는 예쁘고 춤 잘 추는 ‘비디오형’ 가수가 양산된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다.
이런 기형적인 구조를 바꾸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은 인디 레이블 활성화다. 라이브에 강한 실력있는 뮤지션이 쏟아지려면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인디 레이블이 커져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디 레이블은 음악 장르를 다양화하고, 음악을 하고 싶은 젊은이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반드시 활성화돼야 하는 부분이다.
일본만 하더라도 인디 레이블은 수백개에 이른다. 인디 레이블에서 나온 음반만 파는 전문매장이 있는가 하면, 공연거리도 있다. 별도 마케팅이나 프로모션 없이도 2만장 가량 팔리는 것은 예사다. 인디 레이블이 많아야 10개를 웃도는 수준이고, 그나마 앨범을 사고 싶어도 매장에서 팔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 우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 때문에 최근의 록밴드 인기는 인디 레이블의 위상을 높이고,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실제로 롤러코스터와 자우림 소속사인 난장뮤직(T엔터테인먼트)은 독립기획사의 범주를 벗어나 중진급으로 올라가는 추세여서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좋은 음악은 산다=최근 2∼3년 사이 음반시장은 침체에 발이 묶여 있다. MP3 다운로드를 비롯한 여러 이유로 음반판매가 감소한데 따른 것이다. 여기에도 불구하고 록밴드 음반은 꾸준히 판매량이 늘고 있다. ‘좋은 음악은 산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네티즌들은 ‘소장가치만 있다면 음반을 사겠다’며 본인들의 불법행위를 합리화했던 것을 감안할 때, 잘만 만들면 음반시장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음을 드러내 보인 셈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기존의 댄스, 발라드 중심의 천편일률적인 장르에 염증을 낸 대중이 뭔가 새로운 것을 찾다가 록밴드와 맞닥뜨린 것이라며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그러나 일시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좋은 음악에 목말라하던 일반인의 욕구가 이제야 시원하게 해소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라이브공연 활성화=국내 대중음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라이브공연을 활성화하는 것이 절실하다. TV 의존도에서 탈피하고, 실력을 평가받기 위해서라도 라이브공연 문화는 정착돼야 한다.
최근의 분위기는 대중음악의 무게중심이 라이브공연으로 옮겨가는 전초전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마침 정부와 기업체에서도 라이브공연 활성화에 적극성을 띠고 있어 더욱 힘이 실릴 전망이다. 내년 6월경 5000석 규모의 전문 라이브 공연장도 만들어질 예정인 데다, 정부에서도 경영난을 겪고 있는 공연장을 매입해 임대경영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 또 공연 기획사인 SJ엔터테인먼트의 경우 내년중 한·일 합작 ‘록 페스티벌’을 개최한다는 방침 아래 물밑작업에 한창이다.
<정은아기자 ea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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