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브랜드 육성의 전환점

 세계 경제가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심축인 미국은 물론 선진경제권인 유럽연합(EU)도 저성장에 허덕이고 있다. 장기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은 정부의 강력한 소비지출 부양정책에도 불구하고 경기회복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이러다가 세계 경제가 총체적 디플레이션으로 빠져드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 때문인지 중국을 주목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올초 WTO에 가입한 중국이 세계 경제의 전면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올해 약 7%의 고성장이 예상되고 있을 뿐 아니라 내년에도 그 이상의 성장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 경제의 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의 저력은 이쪽 저쪽에서도 나타난다. 가전은 이미는 저가품을 중심으로 자리매김했고 첨단 하이테크 분야인 반도체·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휴대폰·디지털TV 분야에서도 만만찮은 기술력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휴대폰·디지털TV는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가 거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고 보면 중국이 단순히 노동력만 내다파는 나라가 아님을 입증한다.

 기초부품 쪽도 한국산에 버금간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조악하고 품질이 떨어져 주요 세트에 채용하기가 두렵다던 세트업체들도 지금은 협력업체와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당장에라도 공급선을 중국으로 바꾸고 싶다며 중국산 품질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

 문제는 경기가 회복되지 않고 판매가 늘지 않으면 이 같은 세트업체의 움직임이 현실로 다가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수요가 발생하지 않으면 가격을 인하해서라도 소비를 촉진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원가절감 차원에서 값싼 부품 채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한때 현지화 바람이 불면서 러시를 이룬 중국으로의 공장 이전이 부품업계를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는 모습이다. 이들은 그러나 글로벌경영 차원이 아니라 자구책의 일환이라고 했다. 더 머물다가는 앉아서 고사하고 말 것이라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아예 핵심 설비까지 중국으로 옮겨가는 기업이 늘고 있다.

 모 기업은 내년 중 모니터용 브라운관(CDT) 생산라인을 아예 중국으로 옮길 계획이며 첨단 LCD업체들도 현재 모듈공장 설립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이 같은 움직임이 고조되면 국내에는 산업공동화 현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경제 체제에서는 제품도 그렇지만 브랜드가 생명이다. 어디에서 생산하고 만들어졌느냐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80년대 세계를 석권한 일본 가전업계는 엔고불황으로 경기가 침체되자 생산설비를 대거 동남아로 이전해 국내 시장을 지켜냈고 세계 수위의 자리도 잃지 않았다. 소니·마쓰시타 등 이른바 유명 브랜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일류 브랜드가 턱없이 부족하다. 비교우위에 서 있는 경쟁력있는 제품 역시 손에 꼽을 정도다. 정부의 정책은 중국과 달리 기업에 리스크 자금을 조달해줄 여유조차 없으며 최근 경기는 수직하강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쯤 되면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소비가 줄면 가격경쟁력이 뛰어난 제품만 살아남을 것이고 상대적 우위를 지니지 못한 우리 기업들은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란 점이다.

 따라서 선택은 한 가지뿐이다. 글로벌경제의 중심축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을 동반자 관계로 묶어 생산 전진기지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일류 상품·브랜드의 육성책이 선행돼야 한다. 경쟁력이 없는 제품은 과감히 정리하는 용기도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메랑의 그늘로 인해 그들의 주변국가로 전락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특히 부품 브랜드에 대한 육성책은 시급한 과제다.

 브랜드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인식이 너무 소비와 유행 쪽에만 쏠려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모인 산업기술부장 inm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