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컴퓨터통신 사장 강태헌 thkang@unisql.com
남귤북지(南橘北枳). 강남의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뜻으로 도둑을 빙자해 제나라를 비웃는 초나라 영왕을 제나라 안영이 이 말로 재치있게 받아넘겼다고 한다. 그러나 말의 원뜻과 상관없이 귤은 귤대로, 탱자는 탱자대로 각자의 유익함이 있을 것이다. 지금도 강화도에 가면 탱자나무 울타리를 적의 침입을 막는 방벽으로 활용했던 조상들의 지혜가 남아 있다. 더구나 강남의 토양에는 귤이 잘 자라므로 귤을 심고, 강북의 토양에는 탱자가 적당하므로 탱자를 심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합리적이지 않겠는가.
IT와 관련해 엔터프라이즈 솔루션을 들여다 보자. 중대형 하드웨어, 시스템 소프트웨어, 네트워크 장비 등 핵심 분야 중 어느 한 군데 외산 솔루션들이 상위 시장을 차지하지 않은 분야가 없다. 좀 과장하자면 외산 일색의 솔루션 사이에 국산 솔루션들이 단기필마의 형국으로 구색이나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기업이나 관공서의 구매 담당자들도 외산 솔루션 구매가 국부 유출로 이어진다는 특별한(?) 생각을 할 공간이 없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문제겠지만 구매자들은 국산이든 외산이든 가격과 성능면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니냐고 말하는 반면 국산 솔루션 개발 업체들은 가격과 성능에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데도 그저 국산이라는 이유만으로 홀대하니 제품 개발을 위한 투자와 마케팅이 위축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차라리 편견없이 떳떳하게 경쟁하는 수출이 더 쉽다는 말까지 나온다.
한국의 경우 IT산업에 대한 투자가 어느 나라보다도 앞서 있어 그것이 새로운 세기에 국가적 경쟁력의 원천이 될 것이라는 데에는 국내외 많은 전문가들이 공감하고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핵심 솔루션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육성책이 절실하다는 것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 않으면 정보화의 경쟁력 확보로 우리가 혜택을 누리는 만큼 경우에 따라서는 그보다 더 많은 대가를 다시 외국에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땅에 맞는 탱자나무를 계획적으로 육성해 외국의 침투를 막는 방벽으로 활용한 조상들의 지혜를 배웠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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