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하나다. 세계는 통신 네트워크로 단단히 결속됐다. 우리나라, 유럽, 미국, 아프리카나 하나의 통화권으로 묶여 있다. 통화권과 그 알맹이인 표준을 지배하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한다. 각 국의 통신업체들은 저마다 통신 패권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다른 한편에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친다.
통신은 단순이 ‘통신’의 영역을 넘어 산업혁명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국이 정보 혁명시대에서 통신 실크로드를 장악하려면 그동안 이뤄온 성공 신화에 만족하지 말고 세계의 통신 패권 다툼에 적극 나서야 한다.
전자신문은 창간 20주년을 맞아 세계 통신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집중 조명하는 기획물을 마련했다.
영국 런던 메트로폴리탄 외곽의 그리니치 천문대. 그 앞마당에 동판으로 된 경도 0도를 가리키는 날짜변경선이 지난다. 경도 0도를 가리키는 동판에는 서울, 뉴욕, 베이징, 모스크바와의 거리가 표시돼 있다. 이 선이 런던을, 그리니치를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고 있다. 세계의 중심은 런던이며, 런던이 세계의 시작을 의미한다고 마치 시위하는 듯 하다.
경도 0도.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인간의 상상속에서 ‘합리적’으로 분리된 시간을 의미하는 선이다. 이 선 때문에 세계는 영국을 중심으로 시간표를 짜게 됐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유나이티드 킹덤’의 신화는 바로 이러한 표준에서 시작됐다.
네덜란드, 스페인과 함께 제국주의 패권을 다투던 영국은 전세계를 자신이 만든 시간으로 통일했고, 그로 인해 대영제국이라는 명성을 쌓았다. 바로 전세계를 식민지로 만들려는 영국의 야심이 묻어나는 표준화였다. 19세기를 넘어 21세기 초반에도 이러한 표준은 지속되고 있다.
◇표준화의 위력=영국은 나아가 도량형을 통일하고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유럽과 전세계를 라틴어의 한 방언에 불과한 영어로 통일시켰다. 지독한 표준화정책이었다. 이런 노력 때문이었을까. 영국은 수백년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군림했다. 예전의 영화에는 못 미치나 대영제국의 해는 여전히 지지 않고 있다.
맥도널드나 코카콜라도 독점적 지위를 보장하는 표준이다. 맥도널드 햄버거 맛은 세계 음식의 대명사가 됐고,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도시인의 삶을 재는 척도로 활용되기도 한다. 코카콜라의 브랜드명은 상상을 초월한다. 불과 1달러도 못되는 저가의 음료수에 불과하지만 전세계 어느 나라의 이름보다 비싼 존재다. 바로 콜라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갈증을 해소시킨 표준화된 상품이기 때문이다.
세계 통신의 80%는 유럽형 표준을 사용한다. 최근들어선 유럽의 통신사업이 몰락하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기도 하지만 많은 유럽의 통신업체들은 통신패권의 유지를 위해 차세대 표준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통신산업의 중심 핀란드=산타의 나라, 침엽수의 나라 핀란드. 헬싱키 도심을 떠나 피요르드 해안가를 차로 15분 정도 달렸다. 바다쪽으로 삐죽 튀어 나온 절벽에 유리건물로 지어진 그럴싸한 건물이 나온다. 이곳 사람들은 ‘노키아 하우스’라 부른다. 핀란드 곳곳에 ‘노키아 하우스’가 워낙 많아 이 회사 직원들도 정작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바로 그 본사다.
열강 사이에 끼어 간신히 독립해 임업국가로 살아온 핀란드가 언젠가부터 ‘통신 열강’ 대열에 올라섰다. 노키아라는 걸출한 시스템 업체와 소네라라는 통신사업자 역할이 컸다. 인구 450만명에 불과한 작은 나라 핀란드를 정보통신 대국으로 만든 주인공들이다.
특히 노키아에 힘입어 핀란드는 세계 정보통신의 표준을 차지했다.
노키아 하우스 현관엔 전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늘 북적인다. 방문객은 방문객대로, 손님을 맞는 노키아 직원은 직원대로 상대방의 속내를 파악하기 위해 눈빛을 번뜩인다. 방문객들은 어떻게든 핀란드의 향후 전략을 파악해 세계 정보통신의 흐름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국의 통신산업 아직 1위 아니다=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로 꼽히는 노르웨이. 전 국토가 구릉으로 형성된 이 나라에선 우리나라와 같이 전국 어디에서나 이동전화가 터진다. 지하철에서도 통화가 가능하다. 여느 유럽 국가와는 상당히 다르다.
수도인 오슬로 시내 한복판의 대형 이동통신 대리점. 새 단말기를 사려는 손님들로 만원이다.이동통신이 이미 생활의 필수로 자리잡았다. 노르웨이 사람들이 한 이동전화 단말기를 구입해 쓰는 기간은 보통 1년6개월 정도. 파랑 티셔츠 차림의 대리점 직원이 “오슬로에서 가장 큰 대리점이며 매일 단말기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이 정도”라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진열대엔 세계 곳곳에서 온 GSM 방식 이동전화단말기 수십여대가 놓여있다. 맨 오른편에서 두번째에 국내 모 전자업체가 만든 최신형 폴더형 GSM단말기가 있다. 우리 돈으로 80만원 정도. 대리점 직원은 “다소 비싸지만 성능과 인기는 최고”라며 구매욕을 부추기면서 “이 브랜드는 최근 급부상하고 있으며 유럽에서 3위 정도”라고 설명한다.
노르웨이에서 가장 큰 통신사업자인 텔레누르 관계자는 “IMT2000에서 한국이 다소 노르웨이에 비해 앞서 있으나 주파수 경매 비용에 따른 재정 부담만 어느 정도 해소되면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것”으로 자신했다.
전세계 80%를 좌지우지하는 유럽에서 성가를 높이는 우리 업체는 달랑 하나다. 우리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는 통신서비스 분야도 이곳에선 그다지 인정받지 못한다. 우리 스스로 그어 놓은 테두리안에서 일등이라고 아우성친 꼴밖에 안된다.
통신 서비스, 시스템, 단말기 등 3박자가 착착 맞아야 진정한 1위가 아닐까. 이제 단말기 분야에서 한 업체가 생존력을 갖고 세계 통신 중심지에서 버티고 있다. 유럽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시스템 개발과 모바일 결제, 차세대 애플리케이션 등 차세대형 서비스 개발에 나서지 않을 경우 몇년 뒤 우리나라가 통신변방으로 낙오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어 보인다.
<유럽(런던, 헬싱키, 오슬로) 특별취재팀=김상룡기자 srkim@etnews.co.kr 김규태기자 star@etnews.co.kr>
외고-<유럽의 IT산업동향>
윤재홍 -iPark 런던 사무소장(yoon@iparklondon.co.kr)
지난 8월 마르코니의 몰락이 대변하듯이 유럽의 IT산업은 아직도 어려운 시기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유럽의 다양성에 주목해 보면 시장 접근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프랑스 같은 남유럽 국가들은 최근들어 IT분야에서 상당히 낙관적인 투자 결정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유럽의 경우 폴란드나 체코, 헝가리 같은 나라들이 IT산업을 리드하고 있으며 특히 통신시장 개방정책은 이 지역 IT시장 규모 확대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다. 우리나라 통신시장 경쟁정책은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어 우리의 경험을 그들과 나누면 좋은 파트너십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신경제 붐 기간 앞다퉈 단행한 과잉투자의 후유증을 겪은 유럽의 기업들은 비용절감과 투자수익률에 관심이 높다. 이 때문에 SI나 컨설팅 같은 프로젝트성 사업은 침체성을 면치 못하나 IT아웃소싱에 대한 관심은 커졌다.
아웃소싱에 대한 후속 조치로 보안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커진 점도 주목할 만한 추세다. 이 분야는 우리나라가 비교우위에 있는 분야기 때문에 유럽시장 동향에 전략적으로 접근할 경우 상당한 성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들의 비용절감 노력의 결과 유럽의 IT기업들이 유럽권내 제품이나 서비스에 집착하기보다는 가격경쟁력 있는 유럽권 외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관심이 점차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제품의 유럽시장 침투에 긍정적인 신호라 할 수 있다.
유럽의 브로드밴드는 우리에 비해 매우 취약하다. 최근들어 약간의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영국의 경우 일주일에 브로드밴드 가입자가 1만5000 가입자씩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으며 유럽 전체로는 일주일에 약 8만 가입자씩 증가하고 있다.
브로드밴드나 온라인 게임, ISP분야는 우리가 많이 앞서는 분야며 유럽도 결국 브로드밴드 시장과 연관 시장을 넓히려 하기 때문에 유럽의 브로드밴드 초기단계인 지금부터 우리의 전략분야로 관리할 필요성이 있다.
모바일을 중심으로 한 무선통신시장도 우리의 전략분야로 관리해야 할 시장이다. 특히 모바일 미들웨어 시장을 관심있게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 IT시장이 아직은 어려운 상황이나 셀 수 없이 많은 IT품목이 있고 수십개의 나라가 서로 다른 경제 상황과 문화 환경을 자긴 다양성을 염두에 두면 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유럽의 통신 동향
유럽의 통신시장은 지난 수년간 재정적인 측면에서 여려움을 겪고 있으나 최근들어 점차 회생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요즘 2.5세대인 GPRS로 급격히 전이하고 있으며 늦어도 오는 2004년에는 IMT2000 서비스가 활기를 띨 전망이다. 이를 증명하듯 최근 2∼3세대 로밍이 성공했으며 3세대용 단말기 개발도 마무리됐다.
아이파크런던(소장 윤재홍)에 따르면 유럽의 통신사업자들 특히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같은 남유럽 국가들은 최근들어 IT분야에서 상당히 낙관적인 투자 결정을 하고 있다.
동부 유럽의 경우 폴란드나 체코, 헝가리 같은 나라들이 IT산업을 리드하고 있는데 특히 동유럽 각국이 추진하고 있는 통신시장 개방정책은 이 지역 IT시장 규모확대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나라는 통신정책 분야에서 강점을 갖고 있어 이들과 협조적인 관계 유지가 가능하면 사업자 및 솔루션 차원에서는 모바일 미들웨어 부문을 중점적으로 공략하면 시장이 열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유럽 전문가들의 견해다.
무선부문뿐만 아니라 유선분야에서도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유럽의 브로드밴드는 우리나라에 비해서 매우 취약하다. 하지만 최근들어 약간의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영국의 경우 일주일에 브로드밴드 가입자가 1만5000가입자씩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고 유럽 전체적으로 일주일에 약 8만명씩 가입자가 증가하고 있다.
윤재홍 아이파크런던 소장은 “브로드밴드나 온라인 게임 또는 ISP분야는 우리나라가 많이 앞서있는 분야고 유럽도 결국에는 브로드밴드 시장과 이에 연관된 시장이 확장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에 유럽의 브로드밴드 초기단계인 지금부터 우리의 전략분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규태기자 star@etnews.co.kr>
*SK텔레콤 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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