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남의 NTSC, 북한은 PAL

 ◆최연성 군산대 전자정보공학부 교수

 

 인간은 오감을 갖고 외부 환경에 반응한다. 이 오감은 열심히 외부에서 정보를 채집해 대뇌로 전달하는데 가장 많은 정보를 얻어오는 것은 시각이다. 인지심리학자들에 의하면 뇌에서 처리하는 정보의 70% 이상은 시각에서 얻어진다고 한다.

 인간의 발명품 중에는 위대한 것들이 많다. 전기·자동차·컴퓨터 등 이루 다 나열하기도 힘들다. TV도 그 중에 끼워볼 만하다. 텔레비전(television)은 ‘먼 곳을 본다’ 또는 ‘원격시각(遠隔視覺)’이라는 뜻이다. 전기통신이 없었다면 가보지 않고 멀리 떨어진 곳의 일을 본다는 것은 점술가나 신의 계시를 받은 사제가 행하는 기적이 아니고서야 어찌 가능했으랴.

 잘 알다시피 컬러TV방송 방식이 남한은 NTSC, 북한은 PAL이다. 남한은 미국을 따라, 북한은 중국을 따라 결정했다. 세계 점유율로는 유럽의 지원을 받는 PAL이 단연 앞선다. 두 방식은 호환성이 없어 TV수상기·비디오테이프·CCTV 카메라 어느 하나도 같이 쓸 수 없다. 전파는 국경을 초월해 넘나들지만 우리의 시각은 상대의 TV신호를 해독할 수 없다. CDMA와 GSM처럼 이 둘의 대결구도는 한쪽의 승리로 귀결될 수 없는 상황이고, 우리나라의 통일에도 큰 장애물이다.

 지난 53년 미국은 NTSC를 컬러방송 방식으로 공포했다. 이는 초당 30프레임을 전송하는데 독일(당시 서독)은 전송률을 25프레임으로 낮추고 대신 해상도를 우리나라가 채택한 525라인 주사선보다 조금 높인 PAL을 제안한다. 어차피 인간의 시각은 25프레임이나 30프레임의 미묘한 차이는 잔상효과 때문에 구분하지 못한다. 미국을 따라야 하는지 망설이던 유럽은 즉시 독일 방식을 환영하며 PAL을 채택했다. 2차대전의 최대 피해자이자 승전국이기도 한 프랑스는 독일에 향후 첨단기술의 주도권을 빼앗길 수 없다는 생각으로 다시 SECAM을 제안한다. SECAM은 TV수상기가 비싸고 시청 범위가 좁다. 그러나 이데올로기가 SECAM을 살렸다. 서방의 전파 월경을 우려한 당시 소련과 동독 등 동구 공산권 블록은 그들과 접경한 나라들이 사용하는 PAL을 피해 SECAM을 채택했다.

 동서독의 TV방송 방식은 달랐으나 이를 해결하는 운명적인 길이 이후 등장했다. SECAM은 수상기가 비싸서 발명국인 프랑스를 제외한 나머지 나라에는 경제적인 부담을 가져왔다. 그래서 PAL TV로 SECAM을 수신할 수 있는 변종이 등장했는데 이것이 MESECAM이다. MESECAM은 PAL TV에 SECAM VCR를 연결하는 일종의 편법인데 이유야 어찌됐든 동구권은 PAL TV를 갖게 됐다.

 통독 전 동독 주민의 85%가 서독의 TV방송을 시청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통일의 가장 큰 밑거름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여기서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서독이 자기들의 TV를 동독 주민이 재미있게 시청한다고 해서 이를 체제 과시의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았고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보도를 자제했다는 점이다. 그렇게 10년 이상을 기다렸다.

 아쉽게도 NTSC와 PAL의 상호수신은 그리 간단치 않다. 만일 북한과의 방송통합이 급격히 논의돼야 할 경우가 발생한다면 NTSC가 답일 것이다. 기술적 우열이 경제적 가치를 능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컬러TV 보급률은 10%를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에서 가장 흔한 TV기종은 ‘진달래’인데 많은 부품을 일제에 의존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우리는 세계 최고의 보급률과 기술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방송통합에 대해 시간을 두고 논의할 수 있다면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TV방송이 전환되고 있다. 디지털TV도 미국 방식인 ATSC를 채택했다. ATSC는 유럽 방식인 DVB에 비해 강점도 있으나 약점 또한 많다. 미국과 유럽은 디지털TV 방식을 두고도 예전의 NTSC와 PAL보다 더 심한, 거의 전쟁에 가까운 기술 대결을 펼쳤다. 물론 그때와 마찬가지로 승자는 없지만 우리가 ATSC를 채택할 때 북한의 입장과 통일 이후를 바라보는 시각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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