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아젠다 u코리아 비전>제4부(4)글로벌 거버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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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부 제3공간의 생활

 1. U-도시(City)

 2. 제3공간의 대응과제

 3. U-교육(Education)

 4. 글로벌 거버넌스

 5. U-정부(Government)

 6. U-헬스케어

 7. 유비티즌 K씨의 하루

 

 정보화는 세계 정치질서의 구도를 한순간에 바꿔 놓았다. 냉전구도의 해체와 공산권 붕괴를 가져온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가 정보화다. 정보화는 공산권만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본주의 국가들에 더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정보화는 국가의 개념을 뿌리부터 뒤흔들고 있다.

 정보화가 진행됨에 따라 국가간 장벽은 급격히 낮아졌다. 국가는 자국민의 정보와 부를 통제하는데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외국에서 제공되는 음란한 정보나 도박서비스 앞에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국가의 기능과 권력이 급격하게 축소되면서 국가의 통치능력에 의문이 제기됐다. 국가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그 결과 많은 학자들이 거버넌스(governance·지배질서)의 개념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사이버 거버넌스, 인터넷 거버넌스, 네트워크 거버넌스, 법인 거버넌스, 환경 거버넌스, 글로벌 거버넌스 등 다양한 개념들이 등장한 것도 이 시기다. 특히, 지난 92년에 등장한 글로벌 거버넌스라는 개념은 정보화로 인한 국제 정치질서의 재편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급기야 지난 2000년 7월에는 G8정상들이 ‘글로벌 정보사회에 관한 오키나와 헌장’을 채택하기에 이른다.

  정보화와 글로벌 거버넌스는 묘한 관계를 지닌다. 정보화는 국가단위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글로벌 거버넌스의 필요성을 불러옴과 동시에 글로벌 거버넌스를 가능하게 하는 의사소통 수단을 제공한다.

 인터넷 자체가 이미 거버넌스의 문제가 내재돼 있다. 어떤 국가에 의해서도 소유되거나 통제되지 않는 인터넷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자율적인 통치질서가 필요하다. 인터넷 도메인 주소를 민간부문에서 자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국제인터넷주소위원회(ICANN:International Corporation for Assigned Names and Numbers)가 대표적인 예다. 인터넷 도메인 주소는 기술적인 차원을 넘어서 경제적,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 도메인 주소의 선점은 막대한 금전적 이익창출과 함께 치열한 분쟁을 야기했다. 향후 IPV6의 도입에 따라 도메인 주소체계를 둘러싼 경쟁과 분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사물들에 심어지는 식별부호(ID-Tag 또는 auto-ID)를 선점하기 위한 또 다른 전쟁이 예상된다.

 온라인 서비스를 둘러싼 분쟁 역시 기존의 거버넌스에 대한 저항을 반영한다. 저작권을 지닌 오프라인 업계는 기존의 지배질서를 고집하는 반면, 온라인 서비스 업계는 새로운 거버넌스를 주장한다. 온라인 서비스가 국경을 넘나들면서 발생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업계와의 분쟁도 결국은 글로벌 거버넌스 문제로 귀결된다. 국경을 넘나드는 불건전 정보나 사이버 도박에 대한 규제는 글로벌 거버넌스의 틀에서 이뤄질 때 그 효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전자상거래와 전자금융도 전통적인 국가개념을 무너뜨리고 있다. 전자상거래는 기업과 기업뿐만 아니라 기업과 고객을 대상으로 국경을 가로지르는 매매를 보편화시켰다. 전자상거래는 전통적인 세금징수 체계에 일대 혼란을 가져왔다. 특히 관세를 어떻게 부과할 것인가의 문제는 국가들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뜨거운 감자다.

 전자금융은 전자상거래보다 훨씬 근원적인 차원에서 국가의 권한과 기능을 축소시킨다. 자국민의 부가 인터넷을 통해 외국 은행으로 흘러 들어가는 현상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국가는 독자적인 금융정책을 세우기 어려워진다. 세금을 제대로 징수하지 못하고 금융질서를 통제하지 못하는 국가는 더 이상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국가가 아니다.

 전자상거래와 전자금융에서 목격된 공간 불일치는 전통적인 국가개념에 혼란을 불러왔다. 물리공간에서는 국경이 높게 설정되지만, 전자공간에서는 국경이 사라지고 있다. 정보와 돈은 조국을 모른다는 말이 있다. 광속으로 움직이는 정보와 돈은 1초에 지구를 일곱바퀴나 돌 수 있다. 정보와 돈의 흐름에 질서를 부여할 수 있는 글로벌 거버넌스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것이다.

 전자공간은 글로벌 거버넌스가 등장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기도 한다. 단적인 예로 전자 민주주의는 각국의 정치질서에 일대 변혁을 몰고 왔다. 조직화되지 않은 개인의견도 인터넷을 통하여 확산됐다. 인터넷 선거와 낙선 운동은 기존의 정치질서와 불협화음을 일으키기도 했다. 전자민주주의는 전 지구촌을 상대로 전개될 수도 있다. 이미 ICANN은 이사선출을 위하여 전세계적으로 일반회원들을 모집해 전자투표를 실시한 바 있다. 환경보호, 기아대책, 동물보호 등 전지구촌적인 문제가 많아질수록 전자 민주주의가 적용될 여지는 높아진다.

 전자민주주의가 글로벌 거버넌스의 가능성을 높여준다면, 사이버 전쟁은 물리적 국가의 취약성을 심화시킨다. 걸프전 이후 사이버 전쟁이 현실화되고 있다. 제 3공간에서 사이버 전쟁이 가져올 타격은 치명적이다. 공간 서비스가 파괴되면 정보뿐 아니라 물리적 기능까지도 마비된다. 제 3공간에서는 수십초만에 나라전체가 파괴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파괴는 조용하게 이루어진다. 제 3공간의 사이버전쟁은 땀 한방울, 피 한방울 흘리지 않지만 공간전체를 마비시킨다는 점에서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원자탄의 파괴력으로 인해 국제연합(UN)이 유지될 수 있듯이 사이버 전쟁의 무서운 파괴력은 역설적으로 글로벌 거버넌스의 지배력을 더욱 강화시킬 것이다.

 결국 거버넌스는 권력의 문제다. 공산혁명을 이끈 마오쩌둥은 모든 권력이 ‘총구’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그러나 공산권의 붕괴를 가져온 정보화의 시대에 진정한 권력은 지식인의 ‘펜 끝’에서, 그리고 네티즌의 ‘손끝’에서 나온다. 그리고 제 3공간의 권력은 ‘칩 속’에서 나온다. 칩을 지배하는 자가 제 3공간을 지배하고, 제 3공간을 지배하는 자는 공간 안에 존재하는 사물과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공간과 달리 제 3공간의 거버넌스는 직접적이다. 전자공간의 거버넌스가 정보를 매개로 하는 데 반해 제 3공간의 거버넌스는 공간을 통해 직접적으로 사물과 사람을 지배한다. 또 제 3공간의 거버넌스는 강제적이다. 전자공간의 거버넌스는 전자공간에 참여하는 네티즌들에 한해 지배력을 행사하지만 제 3공간의 거버넌스는 그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제 3공간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제 3공간의 지배질서에 편입될 수 밖에 없다.

 또한 제 3공간의 거버넌스는 집단적으로 적용된다. 제 3공간의 공간재화와 공간서비스는 원칙적으로 그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과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새로운 거버넌스 역시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적용된다. 그래서 제 3공간에서 표준의 위력은 막강하다. 제 3공간시대의 기술 표준은 곧 경제적, 정치적 거버넌스를 의미한다.

 이러한 직접성, 강제성, 집단성으로 인해 제 3공간의 거버넌스는 진정한 의미의 거버넌스로 다가온다. 개별적으로 선택될 수 있고 기껏해야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전자공간의 거버넌스는 진정한 거버넌스라고 하기 어렵다. 하지만 제 3공간시대에 칩으로부터 나올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는 권력만큼이나 강력할 것이다. 제 3공간에 대비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동집필>

 하원규 ETRI 정보화기술연구소 IT정보센터장 wgha@etri.re.kr

 김동환 중앙대 공공정책학부 교수 sddhkim@cau.ac.kr

 최남희 국립청주과학대 행정전산학과 교수 drnhchoi@cjnc.ac.kr

 

 ◆제3공간의 무국경화

 세계화와 정보화는 같은 속도로 진행된다. 네트워크로 연결되기만 하면, 정보는 국경 앞에서 머뭇거리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정보화는 무국경화를 의미한다. 전자공간에서 국경의 금은 존재하지 않았다.

 전자공간의 무국경화는 정보에 국한되지만 제 3공간의 무국경화는 공간으로까지 확대된다. 전자공간에서는 편집된 정보가 국경을 넘어 흘러 다니지만 제 3공간에서는 곳곳에 심어진 센서에 의해 제공되는 편집되지 않은 공간정보가 국경을 넘나든다. 제 3공간에서는 단순한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하다. 전자공간에서의 교육공간은 제 3공간에서 학습자 중심의 공간으로 전환되며 동등한 공간정보를 교환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원격의료가 구현된다.

 제 3공간에서는 물류나 제조도 국경을 넘나든다. 공간정보에 대한 자유로운 이동과 공유를 통해 원격제조는 물론이고 원격물류도 가능해진다. 또한 상세한 공간정보의 공유는 국경을 초월한 방범 서비스도 가능하게 한다. 외국 기업이 서울의 센서 네트워크만 지배한다면, 물류와 방범 서비스는 물론이고 교통이나 관광지 안내 서비스까지 제공할 수도 있다. 제 3공간 시대에는 공간재화와 공간서비스가 국경을 초월해 제공되는 공간의 무국경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공간의 무국경화는 국내 공간에 대한 외국 기업의 직접적인 지배를 의미한다. 외국기업이 도시의 건물 곳곳에 식재된 칩들과 센서 네트워크를 소유하는 경우, 그 도시의 공간 서비스는 외국 기업에 의해 지배될 수밖에 없다. 외국 기업이 국내 응급환자를 어느 차량으로 어느 병원에 이송할 지를 결정하고 아침 식단에 오를 신선한 생선을 주문할 백화점과 배달차량도 결정할 수 있다.

 어린이의 안전한 귀가를 감시하는 치안 기능까지 수행할 수 있다. 공간재화와 공간서비스를 외국에 의존하는 도시는 국내에 존재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외국의 영토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우리나라 기업이 외국의 도시공간에 센서를 심을 때, 제 3공간의 영토확대가 가능해진다.

 정보의 무국경화가 국경을 허물어 뜨리는 바깥으로부터의 해체를 의미한다면, 국경의 무국경화는 도시 한 가운데의 공간을 외국에 내어주는 안으로부터의 해체를 의미한다. 제 3공간의 무국경화를 어느범위까지 허용할 지를 결정하는 것은 글로벌 거버넌스의 중대한 이슈로 등장할 것이다. 제 3공간의 공간경쟁은 말 그대로의 영토전쟁이다. 제 3공간시대에는 칩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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