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혁명 카운트다운>(6)꺾이는 `제조업 파워`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급증하는 할인점·전문몰

 

 지난해 국내 유통업계에서는 놀라운 사건이 발생했다. 대우전자가 자체 유통망의 일환으로 구축한 하이마트가 대우전자 제품을 기피한 것이다. 아무리 대우가 워크아웃 상태인 데다 두 회사간 채권채무문제가 개재돼 있다고는 하지만 유통업체가 대메이커를 상대로 제품판매를 거부하는 일은 예전같으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사건이었다. 이후 대우전자와 하이마트 분쟁은 제조와 유통간 힘의 역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시장의 주도권이 제조에서 유통으로 넘어가고 있다.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삼성전자·LG전자등이 대리점·직영점 등 자체 유통망을 통해 제품의 70% 이상을 판매하는 전형적인 ‘생산자시장’이었다. 그러나 전문몰이 등장하고 할인점·인터넷쇼핑·TV홈쇼핑 등 신유통 채널이 확대되면서 시장은 ‘구매자 중심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가격붕괴, 유통점 자체브랜드(PB)상품 확산, 신유통 매출의 급상승 등 곳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감지된다.

 가격붕괴 현상을 보자. 제조업체 전성기엔 메이커가 부르는 가격이 곧 시장가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격파괴를 주도한 할인점을 비롯, 각 유통업체가 제각기 가격을 책정한다. 미끼상품 용도로 파격적 가격을 제시하기도 하고 매장 분위기와 제품 선호도 및 서비스를 차별화해 다른 유통점보다 훨씬 비싸게 파는 업체도 등장했다. 소비자의 소득 수준과 선호도를 감안해 얼마든지 제조업체와 가격협상을 할 수 있다. 제조업체가 설정한 가격이 대개 수급 상황에 따른 일방적인 책정가였다면 유통업체의 설정가격은 소비자의 지불 가치를 중심으로 설정되고 있다.

 하지만 유통업체가 PB상품 기획을 내놓으면서 제조업체의 권한으로 여겨졌던 개발에까지 유통업체의 입김이 뻗치고 있다. 유통업체가 PB상품을 제조업체에 발주하면서 제품규격·디자인·기능 등을 요구, 자연스레 발생한 현상이다.

 이에 따른 제조와 유통업체간 영향력 전환은 매출 비중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대리점과 직영점 등 자체 유통망 판매비중은 지난해 60% 수준으로 떨어졌고 대신 한자릿수에 머물던 전자랜드·하이마트 등 전문몰 비중은 25%까지 올라섰다. 이마트 등 할인점이 차지하는 가전 매출 비중도 지난해 15%에서 올해 20%까지 오를 전망이다. 여기에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몰의 비중도 급상승하고 있다. 할인점과 전문몰은 이 여세를 몰아 공격적인 영토 확장에 나서고 있다. 하이마트·전자랜드 및 할인점 등이 급속히 매장확대에 나섰고 매출규모는 백화점 수준에 맞먹을 전망이다.

 그나마 삼성전자·LG전자 등 대형 메이커는 아직 유통업체에 ‘협상력’을 유지하고 있다. 외부 유통망의 확대에 대응키 위해 업체마다 직영망을 새로 정비하는 등 주도권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하지만 이미 시장은 소비자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중이다. 생산자 독점 시장이 해체되고 유통업체가 소비자 가치에 맞춰 합리적으로 가격구조를 조정하는 이른바 ‘스탠더드 프라이싱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유통은 소비자의 요구를 파악하고 이를 제품에 반영하기 위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더없이 좋은 창구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제조업체는 브랜드·디자인·기술 등 무형의 가치로 승부하고 마케팅과 판매, 정보수집 등은 유통업체에 일임하는 쪽으로 제조와 유통의 위상이 새롭게 변하고 있는 것이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