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아젠다 u코리아 비전>제1부 제3공간의 등장(2)전자공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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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는 공간혁명의 역사이기도 하다.

 농업혁명은 떠돌아다니던 유목민들에게 보금자리라는 새로운 정주공간의 개념을 심어주었다. 농업혁명에 이은 도시혁명은 생산기지로서 농촌과는 차별화된 유통과 소비 중심의 귀족적인 도시공간을 창출했다. 그리고 산업혁명은 물리적 거리와 공간에 관한 기존의 개념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1차 세계 대전을 통해 유럽 전역은 단일의 전쟁 공간으로 확대되고 2차 세계 대전에서는 세계 전역이 하나로 연결된 전쟁 공간이었다. 아시아 대륙의 끝에 붙어 있는 우리나라가 세계를 무대로 고도의 경제 성장 가도를 달리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이렇게 축소된 공간 개념 때문이다.

 공간혁명의 역사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현재 진행중인 혁명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공간혁명이다. 수천 년에 걸쳐서 축소에 축소를 거듭하던 물리공간은 급기야 전혀 새로운 차원의 전자공간을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더욱이 전자공간은 이미 물리공간으로부터 독립해 독자적인 진화를 시작했다. 수천년의 세월이 걸린 물리공간의 진화 수준과 맞먹는 전자공간의 진화가 21세기 초반들어 수십년간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전자공간의 혁명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짧은 시간에 전면적인 변화를 불러온 압축 혁명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만큼 전자공간 혁명은 충격으로 다가오고 소수의 공간 엘리트들만이 이 충격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공간의 탄생과 진화를 가져온 원동력은 IT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정보와 통신의 기술혁명에서 찾을 수 있다. 초기 IT혁명은 80년대를 전후해 발생한 컴퓨팅 혁명으로 대표된다. 무어의 법칙이 말해주듯 데이터 처리 속도의 지속적인 혁신은 컴퓨터의 저렴화와 소형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 단계의 IT혁명은 네트워크로 연결된 컴퓨터가 아니라 책상 위에 나홀로 존재하는(stand alone) 컴퓨터에 의한 것이다. 이는 점(point)에서의 IT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2단계 IT혁명은 네트워킹의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다. 1단계 IT혁명이 컴퓨터에서 출발했다면 2단계 IT혁명은 컴퓨터들을 연결시키는 네트워크에 초점을 둔다. 사회 구석구석에 확산된 컴퓨터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되면서 정보공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네트워크라는 선은 컴퓨터라는 점과 점을 연결하고 네트워크의 선들이 촘촘히 연결되면서 인터넷이라는 면을 탄생시켰다. 이로 인해 네트워크가 핵심적인 국가 인프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은 역사상 최초로 시간과 공간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21세기 키워드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단연, 인터넷이 1순위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아날로그 시대의 라인워크(Line Work)는 인터넷 시대의 네트워크(Network)로 대체됐다. 라인워크의 단선적인 연결고리와는 달리 인터넷은 지구상의 수많은 연결고리를 하나의 공간으로 연결시켰다.

 특히,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정보를 순식간에 검색할 수 있는 웹(www)의 등장은 인터넷에 연결된 PC를 통해 거대한 인터넷 공간을 자유자재로 항해하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정보를 교환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정보처리의 양대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컴퓨팅과 네트워킹의 혁명은 시스템의 지능성과 효율성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시켰다.

 3단계 IT혁명은 인터넷이라는 면에 각종 콘텐츠가 집적됨으로써 3차원 공간으로 발전된 시기다. 기업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가정과 개인에게 PC와 초고속망 서비스가 보급됨으로써 인터넷의 대중화가 시작됐다. 21세기 이후부터 본격화된 3단계 IT혁명을 통해 인터넷은 네트워크의 네트워크로서 의사소통·정보교환·정보공유 그리고 통신과 매스미디어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를 굳혔다. 3단계 IT혁명은 또한 전세계의 인터넷 이용자수가 수억명을 넘고 전자공간을 창출하는 인터넷 호스트 컴퓨터가 1억대를 넘어서면서 전자공간이 빅뱅 단계에 접어든 시기다.

 3단계 IT혁명의 특징은 거의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인터넷에 포섭됐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시장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인터넷 상의 시장(market)은 장소보다는 행위에 초점을 둔다. 인터넷으로 사람이 모이면서 전자상거래로 대표되는 e비즈니스의 등장과 확산이 가능해졌다. 전자공간이 단순한 정보의 바다가 아니라 물리공간을 중심으로 수행되던 경제적 활동을 대신하고 물리공간에서 이뤄지는 상거래 활동에 버금가는 가치와 부를 창출함으로써 디지털 경제라는 새로운 경제체제가 출현했다.

 또한 전자정부 서비스·원격교육·인터넷 방송·전자도서관·가상공동체 등의 출현으로 새로운 사회경제 체제가 등장하고 지적재산권 제도와 전자상거래 제도 등 디지털 경제와 사회를 완성시키기 위한 정책들도 3단계 IT혁명 시기에 추진됐다.

 이처럼 2단계 IT혁명이 전자공간의 틀을 마련했다면 3단계 IT혁명은 전자공간 속에 들어갈 내용(contents)을 창출한 시기다. 이전의 전자공간이 비어 있는 공간이었다면 3단계 IT혁명을 통해 전자공간은 정보의 보고일 뿐만 아니라 금광이 묻혀 있는 노다지 공간으로 발전했다. 2단계 IT혁명을 통해 창출된 전자공간은 3단계 IT혁명으로 인해 비로소 하나의 독립된 공간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리고 현재 진행중인 4단계 IT혁명은 전자공간과 물리공간을 융합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제3의 공간을 창출하는 단계다. 4단계 IT혁명 과정에서 전자공간은 물리공간으로 침투하고 물리공간은 전자공간을 지향한다.

 냉장고·TV·오디오세트·청소기·주방세트 등 가정의 전자 제품들뿐만 아니라 목욕탕·거실·지붕·도로·가로등까지도 지능화, 정보화, 인터넷화 된다. 초소형 컴퓨터와 휴대폰이 초고속 무선 인터넷과 결합하고 수백 Mbps급의 전송속도를 낼 수 있는 초고속 홈네트워크 시대가 도래한다. 따라서 4단계 IT혁명 과정에서의 정보화는 전자공간과 물리공간 간의 괴리와 부조화를 줄이기 위한 융합적 노력에 집중될 것이다.

 4단계 IT혁명을 거치며 전자공간과 물리공간의 경계도 모호해진다. 어디서부터 전자공간인지 그리고 어디까지가 물리공간인지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질 것이다. 더 이상 물질과 정보가 독립된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물질은 정보를 향하고 정보는 물질에 탑재(implant)된다. 마치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구분할 수 없는 것처럼 4단계 IT혁명은 물질과 정보가 혼연일체되어 ‘살아 숨쉬는 공간(living space)’을 창출해 낸다.

 향후 4단계 IT혁명이 완성되면 닷컴 기업이나 닷넷 기업이라는 칭호는 사라질 수 밖에 없다. 모든 기업들이 전자공간과 물질공간에 걸쳐서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든 회사가 제 3공간 기업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모습으로 변신하게 되는 것이다.

 제 3공간 시대를 앞당길 4단계 IT혁명은 이미 시작됐다. 물리공간과 전자공간을 넘나들며 이 혁명의 전주곡은 조용히, 그러나 강렬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공간시대를 여는 혁명의 한가운데 서 있다. 그래서 이제는 모두가 제 3공간이 열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공동집필>

 하원규 ETRI·IT정보센터장 wgha@etri.re.kr

 김동환 중앙대·공공정책학부 교수 sddhkim@cau.ac.kr

 최남희 청주과학대·행정전산학과 교수 drnhchoi@cjcnet.chongjunc.ac.kr

 

◆인터넷 빅뱅이란

 인터넷은 전자적인 빅뱅을 통해 형성된 또 하나의 지구이다.

 인터넷 빅뱅은 불과 수십초의 대폭발로 거대한 우주 공간을 탄생시킨 빅뱅 이론을 연상시킨다. 인터넷 상에서 다양하게 펼쳐져 있는 수많은 사이트들은 마치 밤하늘에 우주 공간을 수놓고 있는 은하수와 같다. 거대한 제 3공간 역시 21세기 초의 빅뱅을 통해 한순간에 형성될 것이다.

 전자적 빅뱅의 폭발력은 정보기술의 혁신, 유무선 네트워크의 초고속화, 콘텐츠의 멀티미디어화 그리고 인터넷 서비스의 대중화와 상업화 등 여러 정보기술들간의 절묘한 결합에서 비롯됐다. 여기에 새로운 사회경제적 기능의 창출과 물질공간의 한계에서 비롯된 공간재편, 그리고 새로운 공간 창조의 강렬한 욕구가 결합해 전자공간의 질서가 스스로 조직화되고 있는 것이다.

 전자적 빅뱅을 통해 탄생한 전자공간(cyber space)은 기존의 일반 물리공간에서 이뤄지던 전통적인 기능을 대체하는 동시에 물리공간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했던 새로운 기능을 창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인류 문명의 중심이 물질공간에서 전자공간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인류 문명의 한가운데서 벌어지고 있는 제 3공간의 빅뱅을 직접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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