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분야 산·학·관·연 전문가들의 모임인 ‘정보통신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임(회장 한상기 벤처포트 사장)’ 4월 월례 조찬토론회가 전자신문 주관으로 23일 서울 강남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렸다.
각계 약 20명의 전문가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는 이성국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기술경영연구소장이 ‘차세대 IT 전망과 개발 전략’을, 최양희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가 ‘차세대 IT기술개발 전략’을, 강영기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기획조사그룹 상무가 ‘최근 IT업계 동향과 선진업체 전략’을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주제발표 이후 열린 자유토론에서 참석자들은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는 차세대 IT 개발 전략 방법론 및 문제점을 중심으로 진지한 토의를 벌였다. 이날 주제발표와 내용을 요약 정리했다.
◇사회(오재철 아이온커뮤니케이션즈 사장)=이 자리에서는 차세대 IT개발 전략을 모색하기 위한 방법론을 토론해 보고자 합니다. 앞서 주제 발표한 내용을 중심으로 질의해 주시면 주제 발표자들이 답변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할까 합니다.
◇서진구(코인텍 사장)=최양희 교수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코인텍은 소프트웨어(SW)를 개발하는 전문업체다. IBM·노키아 등 주요 외국 컴퓨터·통신기기업체들이 최근들어 사업의 무게중심을 시스템을 비롯한 하드웨어(HW)에서 SW 및 서비스로 옮겨가고 있다. 그만큼 앞으로 IT산업은 HW 중심에서 SW 및 서비스로 무게중심 전이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그동안 제조업·HW 우선정책을 펼쳐왔다. 이제는 산업의 무게 중심이 바뀌고 있는 점을 감안, SW 및 서비스산업을 육성하는데 보다 많은 정책적 배려가 뒤따라야 한다고 본다. 이와 더불어 SW와 서비스는 무료가 아니라 돈을 내고 사서 쓰는 재화라는 점이 깊이 인식되었으면 한다.
SW개발 전문업체를 운영하다보니 전문 SW개발 인력 부족에 따른 어려움이 가장 큰 경영애로로 대두되고 있다. 기업에서 마음놓고 활용할 수 있는 SW전문 개발 인력 양성이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대학 차원에서도 현장에 직접 투입할 수 있는 SW 인력을 공급해 주었으면 한다.
◇이성국(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기술경영연구소장)=정통부를 비롯해 유관 정부 부처에서도 SW 및 서비스산업의 중요성을 인식, 다각적인 육성정책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ETRI 차원에서 구체적인 정부의 SW 및 서비스산업 육성정책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전문인력 양성 시급성은 이미 언론을 통해 수없이 지적됐고 정부도 중장기적인 IT 인력 육성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재구(아이쓰리컨설팅 사업본부장)=옷을 만들더라도 원단업체, 기계업체, 디자인업체 등 다양한 전후방산업의 뒷받침이 있어야 하듯이 IT산업도 전후방산업이 발달해야 그 뿌리가 튼튼해 질 수 있다. 그런데 국내 IT산업은 너무 일방으로 치우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특히 앞으로는 모든 산업이 접목되고 융합되는 ‘컨버전스(convergence)’ 경향을 보일 것으로 보여 IT업체들도 IT 본연의 기술을 기존 전통산업과 접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보는데 적극 나서야 한다. 전통산업과 IT산업을 효율적이면서 유기적으로 접목, 새로운 사업 기회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ETRI 관계자들이 참석해서 말인데 우리가 모든 분야에서 일등을 할 수는 없다. 승산이 있는 분야에 집중적으로 자원과 인력을 투입하는 ‘선택과 집중’의 연구개발 체제 구축이 시급하다. 국산주전산기 개발 같은 연구 개발 프로젝트는 이제 지양해야 한다. 앞으로는 국제 경쟁력이 없는 분야에 연구 개발 역량을 투입, 헛수고하는 사례가 없었으면 한다.
◇강영기(삼성전자 경영기획팀 기획조사그룹 상무)=차세대 IT산업의 부가가치는 SW와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융합상품에서 나온다. 그렇다고 해서 제조업의 가치가 떨어진다고는 볼 수 없다. 제조업은 부가가치 창출의 원천이다. 다만 제조업의 패러다임이 기존 소품종 다량 생산체제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전환되고 하이테크와 하이터치가 결합된 컨버전스 제품에서 나온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이야기를 해보면 삼성전자는 반도체·이동통신·디스플레이·정보가전 등 거의 모든 IT 부문에서 세계 정상의 기술과 제조 기반을 갖고 있다. 이제는 이들 하이테크 제품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어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같은 측면에서 삼성전자는 홈네트워크·유비퀴터스(ubiquitous) 컴퓨팅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박기순(아라리온 부사장)=대기업에 근무할 때는 잘 몰랐는데 중소기업에 와보니 국내 중소기업 특히 벤처기업의 연구개발 환경이 너무 열악하다는 점을 절감했다. 인력도 인력이지만 연구 개발에 투입되는 막대한 재원을 마련하기가 싶지 않다. 정부가 중소 벤처업체의 연구개발 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한 특단의 지원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라리온의 경우 차세대 인터넷 인터페이스를 개발하고 있는데 아라리온 혼자 이를 밀고 나가기엔 벅차다. 정부, 정부 출연연구기관의 지원이 있었으면 한다.
◇이성국 소장=ETRI의 SoC 지원센터에는 20여개 벤처업체가 입주해 있고 업체마다 최대 2억원 정도의 연구개발비가 지원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와 더불어 반도체 로직 및 알고리듬 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20억원 상당의 첨단 시뮬레이션 장비도 갖추고 있다.
정부 및 출연연구기관도 연구개발의 효율성 및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해 연구과제 도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고민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김낙명(이화여대 정보통신처장)=SW산업에 대한 개념 정의가 새로 수립돼야 한다고 본다. 미래 전략산업으로 부각되고 있는 시스템 IC의 경우 로직과 알고리듬을 반도체라는 그릇에 집어넣은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로직과 알고리듬은 SW다. 그러나 이 SW는 흔히 지칭되는 응용 애플리케이션 SW와는 근본적으로 차원을 달리하고 있다. 이같은 펌웨어적 SW에 대한 인식 제고 및 개념 정리가 필요한 것 같다. 그러나 현재 대학에서는 물론 정부에서도 이같은 시스템 IC에 대한 인식이 미흡할 뿐더러 분류체계도 없는 것 같다. 이제는 HW·응용 애플리케이션 SW로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는 지양하고 삼분법적 사고가 필요한 시기다.
◇최양희(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부 교수)=김 교수의 말에 동감한다. SW에 대한 정의를 재정립해야 하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더욱 시급한 과제는 SW개발 기획자의 취약한 발언권을 강화하는 문제다. SW개발도 중요하지만 시장 경쟁력이 있는 SW개발 과제를 발굴하는 업무도 중요하다. 국내에는 SW개발 기획 전문가들이 크게 부족하다. SW개발 기획 전문가 부족은 결국 국내 SW산업 경쟁력 취약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제는 대학·연구소 등에서 SW개발 기획 전문가의 양성에도 눈을 돌려야 할 때다.
현재 서울대학교 SW연구센터는 향후 독자적인 마켓을 형성할 수 있는 SW 분야를 발굴하기 위해 기획 전문가의 양성에도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회=SW산업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인력 양성 등 교육부문에서의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보는데 이에 대해 토론을 해보고 싶은데요. 인력과 관련해 현장에서 느낀 점을 말한다면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일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일이 더욱 늘어난다는 점이다. 인력이 충원되면 기존 인력의 업무가 줄어들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신입사원 재교육, 실무교육 등으로 기존사원의 로드가 더 많아진다는 점이다. 이는 대학을 졸업한 인력들이 현장에서 바로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중소기업은 신입사원을 채용하기보다는 경력사원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현실과 유리된 현행 대학 인력 배출 시스템은 개선돼야 한다고 본다.
◇강영기 상무=고급인력 양성은 정말 시급한 과제다. 정확하게는 알지 못하지만 삼성전자의 경우 신입사원 교육 및 기존사원 재교육에 매년 1500억원 정도를 투입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 대학과 공동으로 인력 양성 프로그램도 운용하고 있다. 정말 IT관련 인력 양성은 이제 더 이상 미룰수 없은 시대적 과제다.
국내에서 고급 IT 인력이 부족한 까닭은 교육 시스템의 부재에서 비롯됐다기보다는 국가 IT 전략 부재에서 기인됐다고 보는 게 더욱 정확하다. 미국은 IT산업 육성과 관련해 애초부터 다양한 교육적 기회 및 재교육 프로그램 개발에 전력을 해왔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시스템 구축에만 열을 올렸다. 이로 인해 ‘정보화=정보통신 시스템 구축’으로 인식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정보통신 인프라는 정보화의 수단이지 정보화 자체는 아니다. 정보 인프라 구축 중심으로 국내 IT산업 정책이 경사되다 보니 인력 개발 및 활용능력 배양에는 소홀한 구석이 나타났다. 우리가 21세기 세계 IT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인력 양성과 더불어 콘텐츠 개발에 적극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양희 교수=인력 양성에 대한 지적에 할 말이 없다. 현행 대학교육 시스템으로는 기업에서 필요한 인력을 양성해 낼 수 없다. 교수진도 부족하고 실험실습 기자재도 턱없이 부족하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현장실습 경험이 중요한데 인턴사원으로 연수를 받고 온 학생들을 인터뷰 해보면 기업 실무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고 말한다. 인턴사원들이 기업에 들어가면 현장 업무에 참여하기보다는 단순 업무 내지 견학 차원에서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겉돌고 있는 인턴사원제의 개선이 시급하다.
학교 현장에서 느낀점인데 이제는 산·학 연계 차원의 인력양성 프로그램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기업에서 커리큘럼을 짜서 학교에 제시하고 실험실습 기자재도 지원했으면 한다. 이렇게 되면 기업 실무에 즉시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을 배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장병수(KT 서비스개발연구소 BM개발팀장)=앞으로 IT산업에서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본다. 그런데 현재 학교와 정부 차원에서 서비스에 대한 인식이 미흡한 것 같다. 차제에 대학 커리큘럼을 혁신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특정 분야 전문가 즉, 스페셜리스트가 필요하지 범용 인력은 더 이상 기업에 필요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하원규(ETRI IT정보센터장)=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겠다. 오늘 아침 러브호텔에서 출근했는데 러브호텔에 가보니 첨단 IT로 도배된 듯한 인상을 받았다. 미래 국내 IT산업의 한 축을 담당할 것으로 보이는 홈네트워크 기술이 이미 러브호텔에서는 구현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는 항상 상상의 나래를 펴고 IT산업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를 꿈꾸어 본다. 요즘 관심은 유비퀴터스 컴퓨팅이다. 언제 어디서나 IT 테크놀로지를 향유할 수 있는 유비퀴터스 컴퓨팅은 국내 IT산업계의 화두로 대두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IT는 테크놀로지 차원을 넘어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을 구현하는 도구라는 점을 재삼 강조하고 싶다.
<이희영기자 hy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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