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우여곡절 끝에 하이닉스 매각협상이 양측의 공식적인 양해각서(MOU)를 체결함으로써 새국면을 맞고 있다. 외견상 하이닉스 매각협상은 지난해 12월 3일 하이닉스와 마이크론간 맺은 ‘전략적 협력방안 협의’ 이후 가장 큰 진전을 이루며 매각쪽으로 기우는 듯한 인상이다.
그러나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번 MOU 체결의 목적이 하이닉스를 매각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협상결렬의 수순을 밟기 위한 ‘면피용’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MOU는 지나치게 전제조건이 많고 채권단측이 일방적으로 양보한 구석이 적지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MOU가 효력을 발휘하려면 이달 30일까지 양쪽 이사회 승인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매각대금으로 받을 마이크론 주가를 시세(29.5달러)보다 턱없이 높은 35달러로 책정한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당초 매각대금은 38억달러에 원칙적 합의를 이뤘으나 이번에 주식수를 1억860만주로 확정, 사실상 32억달러대까지 내려왔다.
협상단 출국-재협상-귀국-MOU 발표로 이어지는 닷새간의 일정도 석연치 않다. 당초 예상과 달리 이번 협상팀은 ‘속전속결’로 협상을 추진하면서 얻은게 별로 없다는 지적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덕훈 한빛은행장을 비롯한 협상팀 관계자들은 인천공항을 빠져나오면서부터 결과발표 때까지 줄곧 행방이 묘연(?)했다.
결과발표 시점도 당초 ‘24일’ ‘주중반’ 이랬다가 갑자기 22일로 당겨졌다. 발표형식도 처음엔 하이닉스 보도자료로 대신하겠다고 했다가 이날 오후 늦게 부랴부랴 기자간담회를 여는 등 갈팡질팡했다. 발표 장소마저 비밀에 부쳐진 채 이곳 저곳 설만 무성했다.
어쨌든 이번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MOU는 채권단측으로서는 상당히 불리한 조건으로 체결됐으며 졸속 처리에 따른 헐값시비 논란도 재연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하이닉스 ‘독자생존론’을 주장하는 하이닉스 매각 반대파들의 거센 반발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코 간과해선 안될 부분은 정부나 이번 방미 협상팀이 이런 점을 전혀 예상치 못했을리가 만무하다는 것이다. 업계 일각에서 이번 MOU가 매각보다는 결렬을 위한 수순으로 봐야한다는 목소리가 불거져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만큼 정부와 채권단이 이번 MOU를 바탕으로 매각을 강행하기엔 산의 골이 너무 깊다는 느낌이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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