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사피엔스 이야기>(12)수다떠는 로봇

 만약 로봇을 성별(性別)로 나눌 수 있다면 지금 세상에서 움직이는 대부분의 로봇은 남성(수컷)에 해당된다. 사람이 만드는 물건이란 기술적으로 정교할수록 제작자를 닮기 마련인데 첨단 로봇산업의 경우 전 생산공정을 남자들이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기술자만 득실거리는 연구소에서 만들어낸 로봇들이 남성적 성향을 띠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사내 아이가 갖고 노는 로봇완구(마징거Z, 건담V류)를 보면 기능성, 견고성, 파괴적인 힘에 대한 동경 등 수컷고유의 생물학적 특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반면 여자애들이 좋아하는 공주인형은 친근한 대화상대로 존재할 뿐 애시당초 기능성과는 거리가 멀다.

 이같은 남녀간의 차이는 로봇발달사에 중요한 분기점을 형성한다. 체코의 작가 칼차펙이 로봇은 기계노예라고 선언한 이후 모든 로봇개발 목표에서 기능성과 상관없는 여성적인 요소는 철저히 배제된 것이다.

 24시간 일하는 산업로봇, 전쟁터를 누비는 전투로봇 등은 목표지향적인 사내들이 만들어낸 ‘남성형 로봇’의 전형적인 사례다.

 이처럼 남성전용 놀이터였던 로봇엔지니어링 분야에 최근 여성파워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여성기술자들이 남자보다 뛰어난 감수성과 의사소통능력을 기반으로 퍼스널 로봇개발에서 잇따라 새로운 돌파구를 열고 있는 것이다.

 MIT 미디어연구소의 신시아 브리질은 로봇업계 신진 여성파워를 상징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그녀는 대학원생때 세계 최초의 감성표현로봇 키스멧(Kismet)을 만들어 큰 주목을 받았다. 키스멧은 눈꺼풀과 눈썹, 귀, 입술에 따로 붙은 모터를 움직여 온갖 감성표현을 한다. 주인이 놀리면 키스멧은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리고 부드럽게 달래주면 꾸벅꾸벅 졸기까지 한다. 키스멧은 보디랭귀지뿐만 아니라 초보적인 대화능력까지 갖춰 잠시라도 키스멧과 함께한 사람들은 상대가 로봇이란 사실조차 잊어버릴 정도다.

 무엇보다 대단한 점은 그녀가 로봇을 기계노예가 아니라 감성적인 커뮤니케이션의 대상으로 간주했다는데 있다. 로봇에게 인간과 유사한 대화능력을 부여하고 감성적 친분관계를 맺는 것 자체가 목표였던 것이다. 참으로 신선하고도 여성적인 로봇관이 아닌가. 결국 키스멧은 여자애들이 좋아하는 인형놀이의 하이테크 버전(살아있는 인형)인 셈이다. 브리질의 궁극적인 목표는 풍부한 감성과 유머를 지닌 ‘수다떠는 로봇’을 만드는 것이다.

 이같은 여성형 로봇의 등장은 로봇산업에서 여성전문인력이 필수적인 시기가 도래했음을 암시한다. 문제는 국내 로봇인력 중에서 여성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는 점이다. 미래 로봇꿈나무인 어린이 로봇교실도 온통 사내애들뿐이다. 남학생의 이공계 진학률마저 떨어지는 상황에서 여성 로봇과학자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야무진 꿈일까.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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