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보라고 생각하며 일할 생각입니다. 최선을 다하다 보면 좋은 결과를 낳게 되겠죠.”
지난 2월 제14대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으로 취임한 김시중 회장(71). 어려운 시기에 중책을 맡게돼 어깨가 무겁겠다는 기자의 첫인사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순간 ‘인터뷰가 쉽지 않겠구나’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더구나 일반인이라면 귀여운 손자의 재롱이나 보면서 노후를 보내고 있을 고희의 노인을 대하다 보니 자리는 껄끄럽기 그지 없다. 무엇을 물어보나 하는 생각보다는 몸가짐을 똑바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다리를 꼬아도 될려나’ ‘손으로 턱을 받쳐도 실례가 되지 않을까’ …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처럼 사전 전력점검에 대한 구상이 머리속을 맴돈다.
하지만 이러한 편견은 인터뷰 시작과 동시에 깨져 버렸다.
한마디를 건내면 곧바로 정열적이고 우렁찬 목소리로 달변을 토해내는데 혈기왕성한 젊은이 못지 않다. 10년 전 과총회장을 지냈던 그를 과학기술인들이 다시 과총회장으로 불러들인 이유를 알만했다.
김 회장은 55년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한 이래 고려대 교수, 과학기술처 장관, 광주과학기술원 이사장 등 평생을 과학기술계에 몸바쳐온 대표적인 원로. 때문에 과학기술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열변을 토하게 된다고 한다. 최근 청소년들의 이공계 기피, 과학기술인 사기저하 등이 국가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더욱 할 말이 많아졌다.
그는 청소년의 이공계 기피 문제는 결국 정부의 잘못된 인력공급 정책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즉흥적인 과학기술장려정책과 인력양성이 이루어지다 보니 수요보다 공급이 넘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80년대 유전자공학이 각광받으면서 각 대학들은 우후죽순으로 유전자공학과를 만들어댔다. 그 결과 인력공급은 넘쳐나고 수요는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했으며 결국 잉여인력은 실업자가 되거나 해외로 나가야했다. 기껏 인력을 양성해서 남 좋은 일 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최근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는 나노기술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나노기술이 중요하지만 필요인력을 예상치 않고 무작정 관련학과를 만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많은 학부생을 배출해 놓더라도 기업이나 연구소에서 이들을 수용하지 못한다면 고학력 실업자들이 넘쳐나게 된다. 대학보다는 대학원에 나노학과를 설치해 양보다는 질높은 인력을 육성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그동안 과학기술자는 묵묵히 일하는 얌전한 집단이었다. 그러나 이공계 기피로 과학기술계의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 이러한 과학기술인의 애매한 태도는 미덕이 아니라며 과총은 관변 성격에서 탈피해 권익신장을 위한 압력단체로 변신을 시도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현재 각 정당은 과학기술인들을 전국구 의원으로 배정하는데 인색하고 현 국회의원 중 자연계 대학 출신 의원이 22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여기에다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가 아닌 다른 상임위원회에 속해 과학기술을 위한 활동은 거의 하지 않는 실정”이라고 불만을 토했다.
그는 이에 따라 “이번 대통령선거에서는 각 당 후보자들에게 과학기술정책 공약사항을 요구해 이를 검토하고 이에 대한 과총의 입장을 밝힐 것이다. 다음 총선에는 전국구 국회의원에 일정 비율의 과학기술계 전문인력을 배정받아 과학기술인들이 정치적인 힘을 기를 수 있도록 각 정당과 적극적으로 협의, 젊은 과학기술인들이 의정활동을 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회장은 젊은 과학자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60∼70년대 자신이 젊은 혈기로 과학기술에 매진하고자 했지만 시대상황이 여의치 못하다 보니 다양한 경험을 쌓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재임기간 3년 동안 젊은 과학자들에게 힘을 불어넣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펼칠 계획이다.
“예를 들면 해외에 있는 1.5세대나 2.0세대 교포 과학기술자를 초청, 우리나라 젊은 과학기술자들과 함께 설악산 또는 속리산 등에서 숙식을 같이하면서 학술회의를 열고 정보를 교환하며 인간적 유대관계를 깊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겠다”며 “이를 통해 교포 과학자들에게 조국에 대한 애국심, 한국적인 정서를 심어주고 국내 젊은 과학자들에게는 세계무대로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다져주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라고 한다.
자신과 같은 과학기술계 원로나 직장을 떠난 과학기술인에 대한 애정도 배어났다.
“많은 비용을 들여 양성한 인재들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국가적 낭비다. 임기중에 이들로 구성된 과학기술단위원회를 만들어 이들이 축적한 노하우가 사장되지 않고 중소기업에 전수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또 “한국과학기술자인증서와 같은 명예증서를 수여, 가족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또 남북과학기술협력과 관련해서는 남북화해와 협력, 평화체제 구축을 통한 통일기반 조성을 위해서는 민간차원의 남북과학기술협력이 중요하다며 과총이 앞서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했다.
“남북 과학기술인들의 만남은 10년 전부터 공식적으로 이루어졌으나 각종 정치적인 상황에 따라 차질을 빚었다. 시간과 여건이 성숙되면 자료교환, 상호방문 등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서울, 평양, 외국의 어느 장소에서든지 남한의 과총과 북한의 조선과학기술총연맹의 회장이나 그 밖의 인사가 만나 민간차원의 과학기술 교류를 증진시키기 위한 논의를 북측에 공식 제안하겠다”고 말했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과학대중화 사업도 그의 숙원사업이다. 국민생활의 과학화 운동은 과학풍토 조성과 함께 과총이 추진해야 할 실천적 과제로 매우 중요한 사업이므로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과총에서 발행하고 있는 인쇄매체인 ‘과학과 기술’이 국민대중의 교양 및 과학기술관련 정보를 얻는 창구로 국민속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겠다. 이 잡지를 독립시켜 새로운 양식의 과학기술 대중잡지로 탈바꿈하는 작업도 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과학기술인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해달라고 하자 그는 “우선 생각하고 행동하는 과학기술인이 되어야 한다. 수동적인 사고와 자세 그리고 행동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능동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의식을 강조하고 싶다. 따라서 과총도 정적인 과총이 아니라 동적인 과총이 되도록 앞장서겠으며 회원들의 적극적인 동참과 협조를 바란다”며 말을 맺었다.
한시간의 인터뷰를 마치고 자리를 일어서며 악수를 청했다. 불쑥 내민 그의 손에서 젊은이 못지않은 기가 전해져 왔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kr>
△32년 생 △55년 서울대 문리과대 화학과 졸 △57년 서울대 대학원 졸 △67년 고려대 대학원 졸 △60∼97년 고려대 교수 △88∼89년 고려대 부총장 △92∼93년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대행 △93∼94년 과학기술처 장관 △95∼96년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 이사장 △97∼현재 한국과학문화재단 이사 △99∼현재 강원대 초빙교수 △97∼현재 고려대 명예교수 △96∼현재 광주과학기술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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