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월드]유럽:뉴스 코포레이션-비방디 그룹 `일촉즉발`

  루퍼드 머독이 이끄는 다국적 언론그룹 뉴스 코포레이션(News Coporation)과 장-마리 메시에 소유의 프랑스 미디어그룹 비방디(Vivendi) 사이에 총액 30억달러가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 대규모 법정소송이 진행중인 것으로 밝혀져 화제가 되고 있다.

 더욱이 그 소송내용이 상대편 위성TV기술의 불법 해킹 및 이의 고의적 인터넷 유출 등 기업간 첩보전쟁을 방불케 하는 것인데다 이러한 소송내용을 배경으로 최근에는 프랑스 국가정보기관마저 사건에 개입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유럽인들의 관심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지난주 유럽 언론들은 프랑스 비방디 산하 위성TV업체 커낼플러스(Canal Plus)가 루퍼드 머독이 소유한 영국의 디지털TV 기술업체 NDS를 상대로 10억달러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고 발표했다. NDS가 자사의 위성TV를 수신할 수 있게 해주는 스마트카드의 암호를 불법으로 해킹해 이를 디알7닷컴(DR7.com)이라는 웹 사이트에 무단 게재함으로써 범죄조직의 카드 위조가 빈발하는 등 영업에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는 것이다.

 커낼플러스는 이번 소송에서 승소할 경우 직접적인 피해보상금 이외에도 변호사 비용 등 일체의 소송비용을 포함해 모두 30억달러의 배상금을 NDS에 요구할 복안인 것으로 전해졌다.

NDS는 위성TV업체들을 대상으로 TV 셋톱박스용 암호를 제작해 주는 업체로, 영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영국기업이지만 그 주식은 미국시장에 상장되어 있고, 핵심 연구개발센터는 이스라엘에 위치해 그 제품을 전 세계로 수출하는 다국적 기업이다. 이에 따라 이번 소송도 양 기업의 근거지가 아닌 미국의 캘리포니아 지방법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현재 NDS는 홍콩의 스타TV나 영국의 비스카이비(BskyB) 같은 루퍼드 머독 소유의 위성TV업체뿐만 아니라 이들과 경쟁하고 있는 다른 아시아와 유럽의 위성TV업체에도 자사의 암호를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커낼플러스는 NDS가 지난 98년부터 자사의 스마트카드 암호를 해독하기 위해 이스라엘 개발팀에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지원’하는 등 군사작전과도 같은 캠페인을 벌여 왔다고 주장했다. 커낼플러스의 부사장 프랑코 카라욜은 스마트카드 암호해독을 위해서는 “고도로 훈련된 엔지니어들이 고가의 정밀장비를 이용해 수많은 시간을 투자해야만 한다는 점에서 이번 NDS의 핵킹은 기업차원의 노력이 집중된 결과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더욱이 그는 지난해 12월 커낼플러스가 2년여에 걸친 자체조사 결과를 토대로 이 문제를 NDS와 ‘원만히 매듭짓고자’ 시도했으나 NDS가 이를 일방적으로 거절했다고 밝히고, 이런 의미에서도 이번 법정소송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NDS는 이런 주장에 대해 ‘허무 맹랑한’ 이야기라고 반박하고 있다. NDS의 에이브 펠레드 CEO는 “커낼플러스의 카드 위조가 성행하는 것은 이 회사의 보안기술이 취약한 것이 그 유일무이한 원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커낼플러스가 근거 없는 주장을 계속할 경우 자신들도 맞고소로 이에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더욱이 그는 지난해 12월 커낼플러스가 제안한 사태수습안은 사실상 자신들에게 흡수합병을 강요하는 것이었다고 폭로하면서 이번 소송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유럽의 미디어업계에서는 이번 소송과 관련해 머독과 메시에 사이의 개인관계에 대해 따가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 그간 이들의 관계가 악화일로를 걸어 왔다는 것이 중론인데다 이번 소송 역시 NDS에 몸담고 있는 머독의 두 아들을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출발이 어떠했건 이번 사건의 파장은 심각하다. 우선 프랑스 국가정보기관이 이에 대한 정식수사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가디언지는 프랑스 정부가 이번 소송을 ‘산업정책에 영향을 미칠만한’ 중대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에 따라 ‘비밀정보기관이 직접 이 문제를 다룰 것으로 예상된다’고 프랑스 정보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또한 영국의 ITV 디지털처럼 커낼플러스의 스마트카드 기술을 이용하고 있는 유럽의 여타 위성TV업체들도 이번 소송의 추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번 소송의 결과 여하에 따라서는 그 피해 당사자가 단지 머독의 뉴스 코포레이션이나 메시에의 비방디로 한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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