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 경찰이 한 주택가의 진입도로를 가로막고 기습적인 음주운전 단속에 나선다.
잠시후 인근을 지나던 운전자가 휴대폰을 꺼내 경찰의 단속위치를 입력한 무선 e메일을 어디론가 날린다. 경찰은 밤새도록 음주단속을 했지만 왠일인지 오늘따라 성적(단속실적)이 매우 부진하다. 차량용 정보서비스(텔레매틱스)로 경찰의 음주단속정보를 전해받은 운전자들이 모두 다른 길로 귀가했기 때문이다.
이는 경찰의 교통단속정보가 상업용 콘텐츠로 포장돼 대중에 공개될 경우 곧바로 현실로 드러날 ‘실제상황’이다.
최근 텔레매틱스 시장에서 공권력이 독점해온 교통단속정보가 상용화될 조짐이 속속 나타나면서 정부당국과 텔레매틱스 관련업체간 충돌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교통단속정보가 상업용 콘텐츠로 활용된 사례는 우선 과속카메라 위치를 알려주는 차량용 GPS단말기가 대표적이다.
차량용 GPS단말기는 전국 1000여곳의 과속카메라 위치를 내장해 경찰단속을 따돌리는 데 효과적이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지난 6개월새 약 3만대가 팔렸고 올해는 10만∼12만대 보급이 예상되는 히트상품으로 떠올랐다.
경찰당국은 차량용 GPS단말기가 교통단속을 피하는 도구로 악용될 우려가 있어 공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으나 법률적 제재수단이 없어 사실상 묵인하는 상황.
그러나 GPS단말기의 보급대수가 계속 늘고 경찰의 실시간 검문위치까지 제공받는 기술단계에 이르면 정부와 단말기 제조업체간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카내비게이션 제조업계에도 교통단속정보는 새로운 상업용 콘텐츠로 떠오르고 있다.
카나스, 노바코리아 등은 올해 판매할 신형 카내비게이션의 전자지도에 전국 교통사고 위험지역(무인카메라 위치포함) 경보기능을 집어넣어 소비자 만족도를 높일 예정이다.
한 차량항법장치 기획담당자는 “소비자가 원한다면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교통단속에 대한 정보서비스의 내용과 범위를 점차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밖에 국내 최대의 텔레매틱서비스인 SK의 엔트랙도 오는 3월부터 상위고객층을 대상으로 목적지까지 도로변의 무인카메라 위치를 알려주는 정보서비스를 개시할 방침이다.
이처럼 교통단속정보를 이용한 수익모델이 계속 등장하면서 앞으로 경찰의 교통단속활동에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오는 실정이다.
교통개발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여러 운전자들이 무선인터넷상의 P2P형태로 교통단속정보를 공유할 경우 공권력이 오히려 감시당하는 상황까지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차제에 교통단속정보의 상용화문제에 대해 정부와 관련업계간 협의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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