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 논설실장 hdlee@etnews.co.kr
‘아니 벌써.’ 70년대 한동안 유행했던 대중가요의 한 구절이다. 그 노랫말처럼 벌써 연말이다. 한해를 마감하는 12월의 끝자락이다. 자연은 매듭이나 경계가 없다. 어제와 오늘이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인간이 정한 세월의 매듭 앞에서 또 한해를 역사 속에 묻는다고 생각하니 과거에 대한 아쉬움과 회한이 교차한다.
올해라고 해봐야 이제 닷새밖에 남지 않았다. 덩그렇게 한 장 남은 올 달력도 다음주면 새해 달력한테 자리를 내줘야 한다.
오고 갈때 기척도 없는 게 세월이다. 잡는다고 더 머물다 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등 떠민다고 빨리 가는 것도 아니다. 때가 돼면 스스로 알아서 물처럼 바람처럼 기척도 없이 가는 게 세월이다. 자연의 조화는 이처럼 무언의 행동이며 순환이다.
하지만 가는 세월을 아쉬워하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다. 한번 스쳐간 세월은 뒤를 돌아보는 법이 없다. 혹자는 ‘가는 세월 잡을 수는 없을까’하고 소리쳐 보지만 한낱 부질없는 푸념이다.
지난 1년은 그렇게 마음편한 해는 아니었다. 오히려 무겁고 힘든 한해였다.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정치와 경제 등 어느 분야 하나 매끄럽게 돌아가지 못했다.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타협과 협의·조정이란 민주주의 원칙을 외면한 채 갈등과 대립으로 일관해 “이럴 바엔 차라리 정치인을 수입하는 것이 좋겠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았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여전히 “내탓은 없고 전부 네탓”이라며 상대한테 그 책임을 떠넘기기에 여념이 없다.
국민의 살림살이도 나아졌으면 좋으련만 이또한 불발에 그쳤다. 정치가 경제발목을 잡았다는 비난의 소리도 높았다. 수출은 급감하고 내수는 침체돼 1년내 불황의 늪에서 허우적거려야 했다. 정부가 나름대로 일을 한다고 했지만 결과는 기대이하였다. 갈짓자 정책이란 비판도 나왔다. 게다가 ‘무슨 무슨 게이트’라는 것이 터져 온 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올해 언론사가 뽑은 국내 10대 뉴스에 어김없이 ‘게이트 의혹’ 사건이 버티고 있다. 누가 까마귀고 누가 백로인지 국민은 혼란스럽다. 정말 타락한 벤처기업인과 권력집단의 은밀한 뒷거래인지 알 수 없다. 한국 정치와 경제를 추락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이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미국의 9·11테러 이후 우리경제의 버팀목이었던 IT산업까지 불황에 빠졌다. 그나마 정보고속도로 완성과 인터넷 강국의 위업을 이룩한 것은 성과였다. 하지만 통신시장 구조개편·핵심 IT기술 개발 등의 숙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우리의 이같은 현주소는 정치불신과 경제침체·사회갈등·도덕적 해이·제몫찾기와 집단이기주의 등이 한데 어우러져 빚어낸 총체적 합작물이다. 그래서 올 연말은 어느 해 못지않게 우울하고 가슴이 답답한 것이다. 새해를 맞는 기대감보다 불안감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갈등과 대립·시행착오는 저무는 한해와 함께 과거 속으로 보내야 한다. 이런 일이 지속되면 우리는 더 많은 시련과 고통을 겪어야 한다.
역사의 저편으로 저무는 한해의 고갯마루에 선 지금,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무엇일까. 그것은 지금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그 마음을 바탕으로 자신이 선 자리에서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어제는 지나간 시간이요 내일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다. 지나간 시간과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다. 과거는 불러도 대답이 없고 미래도 손짓해도 곧장 오지 않는다. 어제와 내일에 대한 미련을 가진들 쓸모가 별로 없다.
그보다는 지금 내가 선 자리에서 자신의 일에 진력한다면 내일은 희망적이다. 한단계 발전한 최선의 결과를 잉태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미래에 대비하는 것이요 결국 후회없는 삶이다.
세계를 지배했거나 위업을 달성한 인물의 공통점은 바로 자신의 일에 충실했다는 점이다. 올해의 노을이 지고 있다. 당신은 그 자리에서 지금 무엇을 할 생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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